[54년]동맹국 프랑스에 대한 아이젠하워의 비난?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샤를 드골과 아이젠하워>

1954년초, 디엔비엔푸의 프랑스군 기지가 베트민에게 점령당할 위험 속에서도, 프랑스와 미국은 사사건건 대립을 계속해 나갔다. 디엔비엔푸 이전까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분쟁을 당사국들 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했다면, 미국은 우선 군사력에 의한 승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디엔비엔푸가 함락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는, 프랑스가 미국의 단독 군사개입을 주장했다면, 미국은 영국을 포함한 다국적 군사 개입을 주장했다.

프랑스와의 의견 대립에 직면해서, 아이젠하워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프랑스 정부가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입장을 결정할 능력을 결여했다는 것이었다. 1945년 이래, 프랑스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가 러시아인지 독일인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주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가운데, 유럽의 프랑스 정책은 오락가락하는 혼란 상태라는 비판이었다. 

아이젠하워에 따르면, 프랑스는 여전히 세계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그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인도차이나에서 그런 것처럼 스스로 어떤 중요한 조치가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젠하워는 프랑스를 위한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영감있는 지도자를 추대하는 것인데, 하지만 이 지도자는 "6피트 50의 신장에, 스스로를 클레망소와 잔다르크의 자식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샤를 드골이 현재의 프랑스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아이젠하워는 판단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p.91. 



덧글

  • 포스21 2018/03/05 17:48 # 답글

    진위여부는 둘째로 아이젠하워가 했다니 왠지 믿음이 갑니다. ^^
  • 파리13구 2018/03/05 18:47 #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