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디엔비엔푸 전투와 주요 관련국들의 입장?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제네바 회담 -1954년>

냉전의 주요 당사국들인 미국,영국,소련,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분쟁을 외교를 통해 해결하도록 결정한 것이 1954년 1월말-2월초의 베를린 4개국 외상회담에서 였다. 

베를린 회담의 승자는 프랑스였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외무장관 조르주 비도는 제네바 회담에서 인도차이나 문제를 의제로 상정하는데 성공했다.이는 1953년 봄 이래 프랑스 외교부가 추진하던 사안이었다. 회담의 최종 합의 사항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타결을 위한 회담이 4월 26일에 열리며, 인도차이나 평화는 5월에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인도차이나 문제가 제네바 회담을 통해 논의된다는 것을 파악한 베트민은 디엔비엔푸의 프랑스 요새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 중국 주은래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외교 분야에서의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베트민이 한국 전쟁 휴전이 직전의 중국이 성공한 것처럼, 베트남의 몇몇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베트민은 중요한 군사적 승리를 통해서 제네바에서의 협상력을 높이고자 했다.

베트민의 공세에 당황한 파리는 워싱턴에 디엔비엔푸 요새 구출을 위한 단독 군사개입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다국적 개입을 선호했고, 영국 등의 반공주의 국가에게 베트민에 맞선 합동 군사개입을 요구했다. 

불행히도, 영국은 다국적 개입에 반대했다. 영국은 군사개입이 중국의 베트남 개입을 초래할 수도 있고, 아시아 평화를 위한 제네바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과 같은 서양 강대국들의 입장 차이 때문에, 프랑스,미국,영국은 디엔비엔푸의 프랑스 군을 구출하기 위한 공동 정책을 추진할 수 없었다. 

결국 5월 7일에 디엔비엔푸의 프랑스군 요새가 항복했다. 그 날은 제네바에서 인도차이나 문제에 대한 회담이 열리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p.85.



덧글

  • 무지개빛 미카 2018/03/05 16:49 # 답글

    전쟁은 외교의 최하위 수단이란 말이 다시한번 생각나게 하는군요.프랑스의 욕심이 디엔비엔푸의 참극을 만드는데 일조한 샘입니다.
  • 파리13구 2018/03/05 16:51 #

    베트민은 클라우제비츠적인 전쟁을 한 셈입니다.

    전쟁이 군사적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승리를 위한 것이라는...
  • 포스21 2018/03/05 17:47 # 답글

    디엔비엔푸의 전투엔 그런 노림수가 있었군요.
  • 파리13구 2018/03/05 18:47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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