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휴전 이후 소련의 베트남 정책?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소련] 스탈린 사망 이후, 서양에 대해서 평화 공세에 돌입한 크렘린은 인도차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제시했다. 소련 선전물은 프랑스 식민주의를 덜 공격하고 있었다. 소련 언론은 협상 해결론을 우호적으로 보도했다. 모스크바는 서양과의 협상을 논의하기 위해서 하노이에 특사를 파견한다는 구상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뿐만아니라 7월에,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는 모스크바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 외교공문을 발송, 인도차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불-소 회담을 제안했다. 소련측의 제안에 대해서 소련 주재 프랑스 대사, 루이 족스 Louis Joxe 는 소련이 아마도 공산진영이 전쟁이 아닌 정치적 수단을 통해서도 인도차이나에서의 승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왜냐하면, 선거만 열리면 베트민은 60%의 이상의 득표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전부터, 소련은 인도차이나 전쟁이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전쟁은 프랑스를 약화시키고, 유럽에서의 대서양 동맹 발전을 지연시켰기 때문이었다. 51년 2월에 한국에 대해서 발언하면서 스탈린은 전쟁은 서양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해야만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족스 대사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면서, 인도차이나 상황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에 협조하면서 소련은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위상을 강화시킬 수 있고, 프랑스로 하여금 유럽방위공동체 EDC 가 이제 무용지물이라고 결심하게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족스가 근심한 것은 워싱턴과 마찬가지로, 인도차이나 문제에 대한 국제회의 대신에, 만약 파리가 모스크바와 직접 협상한다면,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의 평화를 위해서, 모스크바와 협상을 체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 경우, 프랑스는 유럽방위공동체를 비준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것은 워싱턴과 런던을 화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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