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한국전쟁 휴전과 프랑스의 대응?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러한 평화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 라니엘 정부는 아시아에서의 또 하나의 냉전의 열전인 인도차이나 전쟁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같은 해 3월의 스탈린의 죽음 이후, 소련의 정책에 모종의 변화가 있고, 이것이 한국전쟁의 휴전을 낳았고, 프랑스도 이 기회를 잡아서 자신의 "더러운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젠하워와 덜레스는 한국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이 모두 아시아에서의 유사한 반공주의 전쟁임을 인정했음에도, 그리고 한국전쟁의 휴전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도차이나 전쟁을 협상을 통해 끝내고 싶지 않았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외무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무부는 평화협상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의도 파악에 나섰다. 프랑스 외무부 관리들은 소련 지도부가 한국전쟁 휴전안에 동의한 것이 스탈린 서거 이후의 소련 정책의 중요한 변화를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즉 스탈린 사망 이후의 사건들이 소련의 일반 정책의 명백한 변화를 보여주며, 이는 소련이 전면전의 위협을 회피하고, 화해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정책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련의 정책 변화가 인도차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프랑스 외무부의 판단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 외무부는 베이징이 베트민에 대한 군사 지원에 가속도를 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인도차이나로 군사개입을 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외무부는 또한 소련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인도차이나 평화협상에 동의할 것으로 믿었다. 왜냐하면, 베이징은 산업화를 갈망했고, 이를 위해서는 평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 분쟁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 고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계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이상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즉 이는 일시적인 전술의 변화이지, 공산주의 진영의 전략의 변화는 아니었다. 따라서, 프랑스의 선택권은 제한되었다. 중국과의 협상을 위한 프랑스의 카드는 중국이 인도차이나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보장하면, 프랑스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 승인하고, 유엔 가입에 동의하며,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끝내고, 중국과의 정상적인 무역 관계를 재확립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는 미국 정부의 강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프랑스 외무부는 한국전쟁 휴전으로 인도차이나 전쟁의 평화적 해결이 순풍을 탈 수도 있지만, 소련과 중국이 두 전쟁 사이의 연계를 거절했고, 영국과 미국도 프랑스의 노력에 열의를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도차이나 전쟁을 협상으로 끝내자는 프랑스와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미국이 충돌한 것이 한국전쟁 휴전과 디엔비엔푸 전투 사이의 인도차이나 전쟁 역사가 될 것이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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