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사망,독일에 대한 공포 그리고 프랑스"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스탈린 서거를 알리는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위마니테-1953년>

1953년 3월 5일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했다. 사망 이후 소련은 이른바 평화 공세 “peace offensive” 에 나섰다. 3월 중순, 스탈린 장례식에서, 말렌코프가 평화적 수단을 사용하여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선언했다.

냉전의 일시적 해빙 분위기에서, 프랑스는 난관의 돌파구로 삼으려 했다. 특히 이 변화를 협상 탁자 위에서 인도차이나 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프랑스는 노력했다. 스탈린 사후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프랑스 정책의 목표는 두가지로 요약되었다.

첫째, 프랑스는 스탈린의 죽음을 인도차이나 협상을 위한 기회로 간주했다. 비록 아이젠하워 정부가 소련의 평화공세의 동기를 의심했고, 진지한 협상에 대해 반대했고, 소련의 국내 혼란을 냉전 승리를 위한 기회로 삼으려 했던 것에 반해서, 프랑스는 기존 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위해 노력하려 했다.

둘째, 프랑스 지도자들은 인도차이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유럽방위공동체의 프랑스 의회 비준이 완료되는 것을 꺼렸다. 53년에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에 대한 군사원조를 유럽방위공동체에 대한 국회 비준과 연결시키려 했다. 파리의 두려움이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분쟁 때문에 극동에서 병력을 소모하는 동안에 만약 유럽방위공동체가 출범하면, 독일이 유럽방위공동체에서의 병력상의 수의 우위를 차지하여 유럽에서 힘의 지위에 오를까 두려웠다. 따라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분쟁 종결 이전의 유럽방위공동체의 출범에 회의적이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p.65.



덧글

  • 존다리안 2018/03/02 20:01 # 답글

    정작 프랑스는 이후 독일을 유일한 우방이라고까지 빨아주던가 그랬을 겁니다. ㅜㅜ
  • 파리13구 2018/03/03 02:25 #

    결국 프랑스는 제국을 버리고, 독일을 선택합니다.

    그 주역은 샤를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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