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프랑스,"우리의 주적은 소련이 아니라,독일!"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냉전 초, 프랑스의 가상 적은 소련 보다는 독일이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의 발발로, 냉전이 국제화했다. 소련이 지도하는 국제 공산주의의 공세가 아시아의 한국과 베트남에서 극성이었고,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유럽일 것이라 예상되었다. 

냉전의 국제화에 직면해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 동시에 대규모 군대를 파병할 만한 군대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1950년 9월, 프랑스,미국,영국의 3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의 딘 애치슨은 만약 유럽 방위군에 독일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유럽 주둔 미군의 수를 충분히 증강할 수 없을 것이라 발언했다. 독일의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독일 재무장론에 대해서, 영국은 이를 수용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프랑스가 이를 완강하게 거절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입장이 영국을 화나게 만들었다. 영국은 프랑스가 소련의 위협 보다는 독일의 그것에 대해 더 걱정한다는 점이 불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은 유럽 방어에 독일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50년 9월까지 독일 재무장에 대한 프랑스,미국,영국의 3국 협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 36.



덧글

  • 까마귀옹 2018/02/27 15:58 # 답글

    바로 6년 전까지 뭔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하면 프랑스의 저 태도는 전혀 이상하지 않긴 했죠.


    그랬던 두 나라가 이제는 샹젤리제에서 공동으로 군사 퍼레이드를 행하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 또한 참 재미있는 역사입니다.
  • 파리13구 2018/02/27 16:00 #

    그렇습니다. ^^

    오히려 소련에 대해서는. 과거 노불동맹의 기억도 있어서...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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