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혁명의 딜레마, "민주 개혁이냐 혁명이냐?"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호치민과 베트남 혁명의 노선>

건국 초기부터, 베트남 민주 공화국은 모순적 존재였다.1945년 8월의 베트민 운동의 총봉기의 첫 번째 목표는 민주적 자유, 집회, 결사, 종교적 믿음, 사상, 자유로운 발언, 여행 그리고 보통 선거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호치민이 낭독한 베트남 헌법은 다음을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생존,자유, 행복의 추구 등이 그러한 권리이다.” 이렇게 민주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부 다른 베트민 분파는 수많은 혁명의 적들을 제거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45년의 베트남 혁명은 민주적 개혁성과 혁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모순되는 갈등 상황에 있었다. 

이 모순은 외교정책에도 반영되었다. 혁명 이후 베트남 민주 공화국은 난해한 문제에 직면했다. 외교정책으로 혁명 정부는 반식민주의,민족주의 그리고 민주적 개혁을 주장해야 하는가? 이 경우, 신생 정부는 인도,인도네시아,버미와 같은 아시아의 반식민주의 운동의 지지 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서양 세력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반대로, 신생 정부는 혁명성을 강조하여, 공산진영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을까? 현재까지 공개된 사료들에 따르면, 적어도 1948년 혹은 1949년 이전까지 베트남 혁명정부는 이 딜레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적어도 1950년 이전까지 베트남 역사의 진행 방향은 유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

Shawn McHale, Assuming the Burden, McHale on Lawrence, H-Diplo Roundtable, 2006.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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