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탈식민화의 차이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각각 유럽 강대국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탈식민화 과정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은 흥미롭다. 전자는 프랑스의 지배를, 후자는 네덜란드이 지배를 받았고, 두 유럽 식민지 모국은 전쟁동안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다.

패전으로 인한 절망 속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전후의 식민지 회복을 위해서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갈망했다. 양국은 열심히 외교적,군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식민지 해방 작전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당했다. 양국은 각자의 식민지에서 단호하고,대중적이며,탄탄한 민족주의 운동의 저항에 직면했다. 양국은 식민지 회복 과정에서 영국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양국은 영국의 노력에 실망했다.

양국은 국내에 탈식민주의를 주장하기를 꺼리는 사회당을 가지고 있었다. 탈식민에 대한 양국 사회당의 두려움은 전통적 지지층의 등을 돌리게 만들어, 지지자들이 중도파와 가톨릭 계열의 정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근심 때문이었다. 

양국은 1945년 말에 각자의 식민지에 군대를 상륙시켰고, 전체 식민지 회복을 위한 군사 행동에 나섰다. 40년대 말에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20만 병력을 투입했다. 프랑스는 이에 비하면 더 적은 병력을 베트남에 투입했다. 식민지 회복을 위해서 양국은 미국과 영국의 원조를 필요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의 반식민주의 경향 때문에 난관에 직면했지만, 결국 재정 지원과 약간이 군수 물자를 받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지원을 더 받은 것은 바로 네덜란드였다. 

하지만 1950년 경,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통치의 평화적 청산을 협상했고, 이 나라를 떠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1950년 프랑스는 군사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면서, 미국을 이 분쟁에 엮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프랑스에게 군사 원조를 제공할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은 인도차이나 분쟁이 식민지 전쟁이 아닌, 아시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냉전의 일환이라는 프랑스의 주장에 설득당하게 되었다.  

1950년,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출처-

Anne L. Foster, Assuming the Burden, Foster on Lawrence, H-Diplo Roundtable,2006.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