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초기 역사의 패배자들?"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비극'으로서의 역사란 무엇인가? 

미국 현대사의 비극으로서의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1950년이었다. 바로 그 해에, 비로서 미국은 베트남 문제를 탈식민주의의 문제가 아닌, 냉전의 문제로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미국은 베트남 민족주의를 지지하기 보다는 냉전 세계전략의 동맹국인 프랑스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1950년 미국의 결정은 결정론적이었는가? 미국은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다른 대안은 없었는가?

물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 냉전 초기 미국의 전략에 대한 저항자들이 있었다. 미국 국무부의 자유주의 정책결정자들과 미국의 유럽 반식민주의 여론, 반제국주의 성향의 영국 여당인 노동당의 좌파, 네루와 같은 반제국주의 성향의 아시아 정치 지도자들, 프랑스의 정치적 좌파들은 다른 방향으로의 정책을 주장했고,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지만, 결국 그들은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냉전의 역사에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5년 동안의 역사는 유동성의 시기로 볼 수 있고, 냉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 시대를 규정하면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레이탐은 "자유주의의 순간"이라 불렀다. 즉 국제질서가 경직상태가 아닌 명확한 모습을 아직 형성하지 못한 단계였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유럽 제국주의의 제국 부활 시도를 지지하기 보다는 아시아 민족주의의 보호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우리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안적 정의를 추구할 수도 있다. 랑케식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역사가 아니라, 역사란 과거 사실에 대한 대안 모색이다.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을 넘어, 역사가는 참혹한 비극을 향해 질주하는 사실에 직면해서, 어떻게 하면 비극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안 제시를 위한 역사학에게, 베트남 전쟁 역사 해석에서의 관심사에는, 역사의 승자인 냉전론자의 주장 뿐만 아니라, 역사의 패자라 할 수 있는 냉전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도 포함되어야 한다.

비극을 결정론적 방식으로 수용하여, 비극의 불가피성을 강조하여, 인간이 역사의 흐름에 대해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의 역사는 비극은 결정론적으로 볼 수 없으며, 대안의 가능성이 존재했음을 제시하며, 이를 위해서 역사의 패자들의 잊혀진 주장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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