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인도차이나 전쟁과 장개석의 중국..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샤를 드골과 장개석 그리고 베트남>

1947년, 본격화된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의 비난에 시달린 프랑스에게 공포심을 더욱 자극한 것은 중국이었다.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남쪽 국경을 넘어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처럼 보였다. 사이공의 프랑스 당국은 적어도 1946년 중반 이래로, 소수의 중국 공산당 군대가 통킹 지역에서 베트민과 협력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전쟁 발발 이후, 프랑스 정보당국은 중국 공산당의 국경 침투와 베트민과의 협력을 감시해왔다. 하지만 문제가 프랑스의 본격적 관심사가 된 것은 1948년 초가 된 다음 이었고, 전쟁 초기에 프랑스를 고심하게 만든 것은 국민당의 야심이었다.

프랑스는 장개석의 중국이 자신의 남쪽 국경에서의 전쟁을 기화로, 인도차이나에서 살고 있는 120만 명의 중국계 교포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기회로 포착, 호치민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중의 국민당 꼭두각시 정부를 수립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이 꼭두각시 정부는 최소한 프랑스에 적대적일 것임이 분명했다. 

1947년 초에 프랑스 외교관들을 사로잡은 소문들에 따르면, 중국이 자국 내에 베트남 임시 정부를 세우고, 적당한 기회가 되면, 이 정부가 하노이에서 정부를 수립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는 장개석의 중국이 이 전쟁을 국제 개입을 위한 명분으로 삼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즉 장개석이 베트남에서의 호치민 공산주의자들의 부상을 핑계로, 국제연합 차원의 개입 혹은 중국이 주도하는 분쟁의 중재를 노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중경의 외무부는 1946년 12월 말에, 중국-영국-미국 합동의 분쟁 중재를 제안했다. 하지만 곧 장개석 정부는 중재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되지만, 프랑스는 장개석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출처-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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