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내각제의 혼란 속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법?"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의원내각제의 잦은 정부교체 환경에서, 중요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프랑스]제4공화국의 혼란과 전쟁정책의 일관성?

프랑스 정치사에서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정치의 특징은 정정 불안이라 할 수 있다. 군소 정당이 난립하고, 이합집산을 계속하면서, 그 결과에 따라 총리가 자주 교체되는 불안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의 역사 서술이 대표적이다.

  "제4 공화정의 헌법은 결국 제3 공화정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1958년까지의 12년 동안 20번도 넘게 총리가 바뀌었다. 주도권은 3개의 주요 정당 공산당 사회당, MPR 으로 구성된 권력 집단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 콜린 존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2001.p.330. ]


1946년 10월에 국민투표를 통해 출범한 프랑스 제4공화국 초, 1944년 9월부터 1950년 5월까지 12명의 총리가 교체와 임명을 반복했다. 

이러한 정치 불안은, 만약 평화시였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상황이었고, 전쟁을 맞아 프랑스는 여론의 통일과 전쟁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잦은 정부 교체 속에서도, 프랑스가 전쟁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했다면, 그것은 국정운영의 꼼수 덕분이었다. 12명의 총리가 난립할 동안에, 프랑스 외무부를 장악한 것은 두 사람이었다. 우파 정당인 공화주의 대중운동 The Popular Republican Movement (French: Mouvement Républicain Populaire, MRP) 소속의 조르주 비도 Georges Bidault 와 로베르 슈망 Robert Schuman 이었다.  

뿐만 아니라, 거의 같은 기간 동안 가장 영향력있는 프랑스의 대사 두명, 즉 워싱턴 주재 앙리 보네 Henri Bonnet 와 런던 주재의 르네 마시글리 René Massigli 가 동맹국 외교 주도했다. 두 사람도 공화주의 대중운동 지지자였다. 

인도차이나 전쟁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 부처인 해외영토부 Ministry of Overseas France 도 보수파가 장악했다. 폴 지아코비 Paul Giacobbi 는 열렬한 드골주의자였고, 마리우스 무테 Marius Moutet 는 보수파 사회주의자였고, 그를 이어 1947년 11월에 장관이 된 폴 코스트-플로레 Paul Coste-Floret 는 공화주의 대중운동 소속이었다.    

이 기간 동안 외무부와 해외영토부에서 보수파 성향의 장관을 보좌한 부처 직원들은 장관들 이상의 철밥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두 부처는 보수파 정치 엘리트들의 영지였다. 그들은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일했고, 이 두 부처에 감히 공산주의자들은 얼씬도 못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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