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프랑스 공산당?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6년의 호치민>

1946년 내내, 전쟁을 막기위한 프랑스와 베트민과의 회담이 계속되었지만, 결국 결렬되었고,

12월 19일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발발 당시, 프랑스 정부의 총리는 사회주의자 레옹 블룸이었다. 사회당은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 개혁적이고, 유연한 입장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전쟁을 막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심지어 호치민의 베트민의 이념적 동지라 할 수 있는 프랑스 공산당도 애국의 물결 속에서, 전쟁을 지지했다. 

12월 24일, 공산당 기관지 위마니테 L’Humanité는 평화의 법과 질서가 재확립 될때까지, 하노이 체제와의 새로운 협상을 연기하는 것이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발발 당시, 국제정세는 베트민에게 매우 불리했다. 모스크바는 베트남의 민족주의 투쟁에 관심이 없었고, 중국 공산당으로 내전으로 바빴다. 냉전의 심화로 인해, 미국도 인도차이나의 반식민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호감 보다는 냉전의 동맹국 프랑스 눈치를 보는데 바빴다. 영국도 프랑스 식민지의 내부의 정치 문제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이같은 외교적 고립 속에서, 호치민의 북베트남은 강대국 프랑스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1946년 내내 호치민이 국내의 강경파의 비난 속에서도 왜 협상을 끝까지 관철시키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156.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