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미국의 환심을 사기위한 프랑스의 노력?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미국의 푸들?>

45년 늦봄, 프랑스가 전후에 인도차이나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다. 미국의 인도차이나 정책은 얼마전 작고한 루스벨트의 프랑스 반환 반대,민족자결주의 정책에서, 후임 트루먼의 동맹국 프랑스 배려 정책으로 변화 중이었다. 하지만, 트루먼의 정책은 중립 정책이었지, 미국이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주권 회복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 프랑스는 미국의 환심을 사기위해 노력했다. 당시의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일본과의 전쟁을 최대한 빨리 종결하는 것이었고, 프랑스를 이를 돕고자 노력했다.

워싱턴의 프랑스 관리들은 미국 합동 참모본부에 프랑스가 태평양전쟁의 완전한 교전국가가 되고자 한다고 알리면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프랑스의 정예 지상군 2개 사단을 제공하고 싶다고 공식 요청했따. 

미국주재 프랑스대사 보네가 미국 국무부의 조셉 그루 Joseph Grew  에게 ,"이렇게 프랑스는 일본의 패배를 위해 정력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결의를 보였고, 미국과의 연대를 위해 새 전선을 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측의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하기 위해서, 프랑스 대사는 극동의 프랑스군이 일본에 대한 어떤 전투에게 참여할 용의가 있고, 비단 프랑스 영토 해방을 위한 전투에만 가담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보네는 그루에게, 트루먼 대통령이 이미 조르주 비도에게, 미국 정부가 프랑스의 극동 전쟁 참전을 공식 선언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85. 

1945년 초반,
인도차이나 식민지 회복을 미국이 도와준다면, 프랑스는 극동지방에서 '미국의 푸들'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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