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영국이 프랑스 식민지 부활을 지지한 이유?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4년의 시점에서,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지 부활을 두고, 이에 반대한 미국과 이에 찬성한 영국의 정책에 차이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전후 세계를 기획하면서 영국 정책결정자들이 프랑스 식민지 부활을 지지한 것은 전후의 유럽 질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전후의 예상 시나리오는 독일의 부활, 소련 팽창주의, 미국의 철수, 총체적인 사회,경제적 붕괴 속에서, 영국 관리들은 전후의 유럽 질서의 안정을 위해서 믿을만한 프랑스가 필수적이라고 전망했다. 윈스턴 처칠은 1944년의 의회 연설에서 "우리의 정책 목표는 강하고, 우호적인 프랑스를 유지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인도차이나 상실은 프랑스에게 치명타가 될 것임은 명약관화했다. 무엇보다 영국 당국자들은 인도차이나 상실이 프랑스의 국가 심리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인도차이나 상실이 프랑스에게 심각한 분노를 유발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영국 외무부의 전후 기획 위원회 The postwar planning committee 는 이런 사태 이후의 가공할 시나리오를 염려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전한 이후 이미 물질적,심리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당한 상황에서, 인도차이나까지 잃게된다면, 프랑스는 전후 협력 과정에서 영국,미국 진영 보다는 동쪽에 더 기댈지도 모른다. 이 경우에 영불 우호 관계가 파탄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자신이 잠시 약할 동안, 어떻게 영국이 자신의 제국을 파괴하는 계획에 가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따라서 파리는 체코슬로바키아 혹은 소련과의 동맹으로 강하게 저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외무부는 "프랑스가 그런 진영에 가담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해외 식민지 같은 프랑스의 사활적 이익에 대한 공감대를 영국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35-36.

17세기 유럽에서 가톨릭 추기경 리슐리외가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는 달리, 가톨릭의 신성로마제국이 아니라,  개신교측에 가담해서, 프랑스의 국익을 옹호한 국가이성의 전통을 고려한다면,

전후 프랑스가 동유럽 진영에 가담할 수도 있다는 영국의 우려는 단순한 탁상공론만은 아니었다. 

16세기의 프랑스는 합스부르크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과 손을 잡은 전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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