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국의 역사를 속담으로 정리한다면?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샤를 드골과 페탱 원수>

프랑스 제국의 역사에서 통하는 속담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유럽에서 빰 맞고, 식민지에서 눈 흘긴다."라고 할 수 있다.

제국의 위용을 가진 프랑스의 위대함에 대한 집착은 프랑스 역사에서 뿌리 깊은 것이다. 프랑스가 제국 확장에 몰입한 때를 보면, 유럽에서 프랑스가 망신살을 뻗쳤을 때와 일치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1873년에, 프랑스 제3공화정 시대의 대표 정치인 레옹 강베타 Léon Gambetta 의 다음 발언은 이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식민주의는 프로이센에 대한 복수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며, 식민주의를 통해서, 프랑스는 조국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들을 중심으로한 물질적 그리고 특히 중요한 도덕적 힘을 다시 결집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프랑스를 위대한 국가로 계속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베타의 야망은 바로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정확히 바라던 것이었다. 보불전쟁과 독일통일 이후, 비스마르크의 프랑스 정책의 핵심은 프랑스가 해외식민지 쟁탈전에 몰두하게 유도함으로써, 독일에게 빼앗긴 알자스-로렌을 잊고 지내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스마르크의 프랑스 해외진출 장려 정책의 보너스는 해외에서의 영국과 프랑스 이익의 충돌이었고, 1898년의 파쇼다 사건,즉 영불의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충돌한 사건은 비스마르크 정책의 결실들 중 하나였다.   

19세기 초 이래, 프랑스의 식민지 야망은 국가적 위기의 시대에 고조되었고, 이는 프랑스 지도자들이 유럽에서의 패배를, 해외 식민지에서의 성공으로 보상받으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강베타 시대의 프랑스는 왜 다시 위대해질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바로 유럽에서 프랑스가 보불전쟁의 패전과 독일 통일이라는 치욕을 경험한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해외 정복이 가장 활발했던 두 시기가, 1870-1871년의 보불전쟁 Franco-Prussian War 의 굴욕 이후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게 항복한 이후 흔들리는 제국을 전후에 다시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 망신당한 프랑스는 해외에서 그 보상을 찾으려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자유프랑스의 샤를 드골과 비시 프랑스의 페탱 원수는 불구대천의 원수였지만, 프랑스가 제국을 보존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이었다. 1940년의 몰락 이후, 두 체제는 프랑스 독립의 희미한 표시를 해외 제국 유지를 통해 달성하려 했다. 비시 프랑스의 제독, 샤를 플라통 Charles Platon 은 "식민지 민족의 존재는 프랑스를 믿을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비슷한 취지에서 샤를 드골은 제국이 "강렬한 희망의 한줄기 빛"이며, 프랑스에게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게임판에서 트럼프 카드"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자유 프랑스와 비시 프랑스에게, 인도차이나는 특별히 중요했다. 알제리나 다른 아프리카 식민지에 비해서는 프랑스 본토와의 민족 정체성과 관련이 적기는 했지만, 다른 해외 영토에 비해서 인도차이나 소유가 프랑스에게 더 많은 강대국 자격을 부여했다. 프랑스 해외 영토의 가장 변방에 위치한 이곳은 대영제국의 보석인 인도에 견줄만 했고, 프랑스가 극동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1945년 초에 드골의 인도차이나 문제 보좌관이었던 프랑수아 드 랑라드 François de Langlade 가 "인도차이나 없는 프랑스는 더 이상 세계 강대국이 아니다."라고 말했을때, 이는 전후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정책이 어떤 것이 될지 시사하는 논리가 될 것이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p.20. 




덧글

  • eggry 2018/02/02 13:41 # 답글

    호오 스킨 바꾸셨군요
  • 파리13구 2018/02/02 13:42 #

    네..^^
  • 말초 2018/02/02 15:00 # 답글

    한국에서 시사 다큐에서는 유럽(특히 독, 프)을 인류가 지향해야 할 최종 스테이지로 찬양하지만 프랑스의 빛에는 식민지라는 그림자가 있고 내부 사회를 보면 선진국의 강점도 있지만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도 굉장히 많지요...
  • 파리13구 2018/02/02 15:01 #

    프랑스는 제국주의 국가였습니다.
  • 말초 2018/02/02 15:52 #

    프랑스에 대해서는 선생께서 저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알고 계신 것 같으니..

    한번 기회가 되시면 왜 프랑스의 제도를 한국에 도입할 수 없는지, 디테일하게 연재를 해보시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8/02/02 15:55 #

    조언에 감사합니다.^^
  • 포스21 2018/02/02 15:28 # 답글

    식민지가 딱히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달려든거 였군요. 왠지 19세기 후반에 이미 식민지는 돈이 안되는 물건이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 파리13구 2018/02/02 15:30 #

    그 자존심 때문에 몇 명이 죽었습니까..ㅠㅠ
  • 말초 2018/02/02 17:28 #

    저.. 혹시 괜찮으시면 조금만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식민지가 돈이 되지 않는다구요?
  • 포스21 2018/02/02 15:59 # 답글

    파리13구 / 피를 봐야만 정신을 차리는 건지... 피를 봐도 정신을 못차리는 건지. 뭐 프랑스만 그런거라기 보단 사실 대부분 강대국들이 비슷한 함정에 빠져서 국력을 소모하고 몰락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 파리13구 2018/02/02 16:01 #

    폴 케네디도 지적한 바 있지만, 제국의 역사가 비극이 되는 것은

    영토 확장을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고,

    때문에, 군사비 지출이 증가하고,

    제국의 재정의 악화되고,

    제국의 위기가 발생하는 비극적 악순환이 존재합니다.
  • 무지개빛 미카 2018/02/02 16:25 # 답글

    역시나... 2차대전 이후에도 그 놈의 인도차이나 식민지를 포기하지 못해 결국 뜨겁게, 아주 핫하게 대였죠.

    디엔디엔푸, 보응응웬잡 장군, 호치민, 그리고 통킹만.....

    결국 월남전의 시작도 다 프랑스 탓입니다.
  • 파리13구 2018/02/02 16:28 #

    전후에 프랑스는 제국을 수복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의지만 앞서는 정신승리를 하다가, 비극을 맞은 것으로 봅니다.
  • 존다리안 2018/02/03 09:55 # 답글

    비스마르크는 역시 현명한 사람이었군요.
  • 파리13구 2018/02/03 10:26 #

    평전을 읽어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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