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마르세유에 대한 호치민의 인상?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11년 초, 청년 호치민은 유럽을 배우기 위해 베트남을 떠났다. 훗날에 그는 서구가 성공한 근원을 보기 위해 프랑스로 가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7월 6일
호치민, 마르세유 도착.

당시 호치민은 '응우옌 탓 타인'으로 불렸다.

1911년 7월 6일 마르세유 항구에 입항했다. 이곳에서 타인은 임금을 받았다. 10프랑 정도였는데, 싸구려 호텔에서 며칠 먹고 잘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타인은 한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프랑스 구경에 나섰다. 타인은 처음으로 전차를 보았다(당시 베트남인들은 전차를 "달리는 집’ 이라고 불렀다). 그는 또 파리의 유명한 거리 칸비에르의 한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들 렀다가 생전 처음으로 “무슈” 라는 존칭을 들어보기도 했다. 그는 이 일을 겪고 난 뒤 친구에게 말했다. “프랑스의 프랑스인들은 인도차이나의 프랑스인들보다 나아. 정중해.” 동시에 타인은 프랑스에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마찬가지로 가난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에도 마르세유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거친 도시였다. 거리에는 온갖 인종 의 선원, 부랑자,상인, 도둑들이 득시글거렸다. 타인은 매춘부들이 선원을 만나기 위해 배에 오르는 것을 보고 말했다. 

"왜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를 문명화한다고 하기 전에 자기 동포들부터 문명화하지 않는 거지?” 


윌리엄 J. 듀이커, 정영목 역, 호치민 평전,푸른숲,2003.p.93.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