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토와 호치민 그리고 미국의 쐐기전략?"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베트남]
[호치민]
[잃어버린 기회] 

냉전의 개막과 더불어 미국은 소련의 세계지배 야욕에 맞서기 위해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 분열을 위한 이른바 "쐐기 전략"을 실천했다. 쐐기 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체제였다.

그렇다면, 유고슬라비아에서 성과를 거둔 쐐기전략이 베트남의 호치민에게는 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50년초까지 스탈린과 호치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따라서 소련은 베트남 혁명에 대해 무관심했고, 호치민 혁명의 성공에 도움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베트남과 소련 관계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기회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전간기 이래 미국의 베트남 인식을 지배한 이미지가 정책형성을 지배했기 때문으로 볼 수 없다. 미국이 베트남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인종적 편견의 대표 주장은 베트남인들에게 자치 정부 수립 능력이 없고, 그들은 외세의 영향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타율성론) 

1947년, 국제적인 왕따 상태의 호치민이 미국의 트루먼 정부에게 지원과 외교 승인을 호소하고 있을 때, 미국 정부는 베트남인은 자치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하면 소련의 조종을 받는 공산주의 위성 독재 국가가 될 것을 우려했다.  

역사가 마크 브래들리에 따르면, 1948년의 베오그라드와 모스크바로부터의 티코와 유고 공산주의 관련 미국 보고서들은 베트남의 그것과 달리,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즉 백인 유고인들에게 자치 정부 수립의 능력이 있다는 것에 아무런 의문도 제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티토의 유고슬로비아를 모스크바의 영향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쐐기전략이 실천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치정부 수립 능력을 가진 티토 체제가 모스크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주적 체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별다른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티토와 호치민의 운명을 갈랐다는 것이다.


참고-

Mark Philip Bradley, Imagining Vietnam and America: The Making of Postcolonial Vietnam, 1919–1950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0), 172. 



덧글

  • 함부르거 2018/01/23 17:36 # 답글

    그러고 보니 해방공간의 한국인들에 대한 미군정의 평가도 비슷하네요. 자주적인 정치를 할 능력이 없다고 봤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당시의 극심한 혼란이 주된 원인이겠지만 인종적인 편견이 작용 안했다고는 말 못하겠군요.
  • 파리13구 2018/01/23 17:39 #

    미국이 자치능력을 인정했다면, 신탁통치는 논리적으로 모순됩니다.

    신탁의 전제는 자치 능력의 부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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