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미국의 베트남 정책과 인문학?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미국의 외교 정책은 인문학의 결실인가? 

태평양 전쟁 동안 미국의 인문 사회학자들은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정부의 전쟁 활동에 동참하여, 자신의 지식을 미국의 정책 개발을 위해 사용했다. 미국의 전후 베트남 정책 개발도 마찬가지 였고, 정책 개발을 위해서 다양한 인문학 전공의 학자들이 동참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함께, 일본 제국과의 일전에 나선 미국은 전쟁과는 별도로, 일본 제국이 타도된 아시아의 질서와 안정을 위한 구상에 돌입했다. 전후 인도차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국무부 산하의 영토문제 소위원회 Subcommittee on Territorial Problems 가 정책 형성을 위한 토론을 담당했다.

1943년 11월에 소집된 회의의 주제는 "인도차이나에서의 프랑스 주권이 회복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조건을 걸 것인가, 무조건 회복인가?"였다. 

소위원회에는 국무부의 극동문제국 대표와 정책 기획 연구반 소속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학자들은 지역 전문가들로, 정책 형성을 위한 학술 조언을 담당했다. 유감스럽게도 베트남을 특별하게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세 명의 위원- 케네스 랜던, 암리 반덴보슈, 멜빈 나이트는 동남아시아와 프랑스 식민주의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인물은 케네스 랜던 Kenneth P. Landon 이었다. 그는 태국에서 10년의 체류 경력이 있는 선교사 출신이었다. 귀국 후에 그는 국무부의 남서 태평양국 국원 State Department’s Division of Southwest Pacific Affairs 이 되었다. 그의 아내 마거릿은 앤나와 왕 Anna and the King 의 작가였다. 그녀의 작품은 데보라 커와 율 브린너 주연의 1956년 영화 왕과 나 The King And I 의 원작이 되었다. 부부가 미국의 아시아 인식에 공헌한 셈이다. 10년 태국 체류를 바탕으로 남편 랜던이 미국 외교정책을 만드는데 공헌했다면, 부인 마거릿은 작품을 통해서 태국을 미국에 소개하는데 공헌했던 것이다. [최근의 냉전 문화사 연구 성과에 따르면, 영화 왕과나 가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냉전 봉쇄정책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캔터키 대학의 정치학자 반덴보슈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대한 1류 미국 학자였다. 그리고 나이트는 경제사가로,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 통치를 연구한 학자였다. 

국무부의 영토문제 소위원회의 위원장은 이사야 바우만 Isaiah Bowman 이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지리학자로, 루스벨트의 지리학자로 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식민지 문제에 대한 대통령 정책 자문을 했다.     


참고- 

Mark Philip Bradley, Imagining Vietnam and America: The Making of Postcolonial Vietnam, 1919–1950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0),81-82



덧글

  • 섹사 2018/01/19 02:19 # 답글

    참고 문헌 제목에서 베네딕 앤더슨 느낌이 빡오네요^^ “왕과 나”가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분석도 흥미롭고요. 잘 읽었습니다.
  • 파리13구 2018/01/19 06:19 #

    감사합니다. ^^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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