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제네바 회담과 균형자 영국...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디엔비엔푸 이후의 인도차이나의 질서와 안정을 토론한 1954년 제네바 회담을 보면,

20세기 영미 관계가 동맹관계를 넘어서는 특별한 관계였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영국의 앤서니 이든과 미국의 존 포스터 덜레스가 충돌했다. 

이든이 공산주의자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이었다면, 덜레스는 협상불가론을 주장했고, 제네바 회담의 결렬을 원했다.

우방이자 냉전의 초강대국 미국에게, 협상 결렬이 회담 목표였던 가운데, 협상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 바로 영국의 앤서니 이든 외무장관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막가파' 스탈린과 협상을 해본 관록의 외교전문가가 바로 앤서니 이든 아니었던가.

개인적으로 이든은 제네바 회담에서의 성과가 필요했다. 이는 처칠 후임으로 다우닝 가의 입성을 노리는 입장에서 업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제네바 회담에서 이든이 이끄는 영국 대표단이 동-서 관계의 입장 차이를 잘 조율하는데 성공했고, 중요한 조정자 역할 내지 균형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미국이 원하던 것처럼 협상을 결렬시키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양세력의 군사 개입을 통해, 힘으로 인도차이나 위기를 해결하자는 구상의 실현을 막은 것은 앤서니 이든의 균형자로서의 외교의 성과라 평가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제네바 회담이 결렬되지 않았다는 점 자체가 이든의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네바에서의 이든 외교의 성공을 도운 것은 또한 모택동과 주은래의 중화인민공화국이었고, 베트민의 야심을 견제하여, 그들이 자제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중국이었다.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1/04 18:41 # 답글

    당시로서는 이든이 잘 한것처럼 보입니다만, 나중에는 공산주의와의 협상은 불가란 덜레스의 주장에 동감이 갑니다. 주장의 동감이요. 덜레스의 공적은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균형자... 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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