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인도차이나에 대한 베트민과 중국의 갈등?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4년 6월 15일 제네바에서

주은래는 베트민의 팜반동에게, 베트남을 제외한 나머지 인도차이나 국가들에 대한 야심을 버리라고 강요했다.

이러한 주은래의 주장에 대해, 베트남 사료는 중국의 주장에 새로운 동기가 깔려있음을 주장했다. 즉 중국공산당이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머지 인도차이나가 베트민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의 입장은 호치민의 정부에게 인도차이나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주는 것 보다는 차라리 라오스와 캄보디아 중립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챙자이 Qiang Zhai 는 중국의 베트남 정책의 이중성을 강조했다 : 협력과 봉쇄.

베이징은 호지명의 당이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외세에 투쟁하는데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협력은 중국의 남부 국경에서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낸다는 점에서 중국의 안보 이익에 기여했고, 인도차이나 혁명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와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베트남 노동당이 독립과 통일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었던 베이징은 베트남이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대한 지배에 나서는 것은 봉쇄했다. 이렇게 협력과 봉쇄 사이에서 중국의 베트남 정책이 모순,갈등 관계를 이루면서, 베트남-중국 관계도 변화해 나갔다.나머지 인도차이나에 대한 베트남과 중국의 갈등은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 참고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p.740.

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950-1975 (Chapel Hill-NC: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0), 21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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