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 이후의 미국 군사개입 논쟁..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아서 아서 래드포드 Arthur W. Radford 합참의장>

1954년 봄의 디엔비엔푸 전투로 프랑스의 철수가 기정사실이 되자,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는 군사개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미국 군 지도부 내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대립했다.

미국의 군사개입 주장을 주도한 것은 아서 래드포드 Arthur W. Radford 합참의장이었다. 래드포드는 협상론자들을 패배주의자로 규정했다. 합참의장은 서양이 군사 개입이냐 아니면 인도차이나와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 전체를 잃느냐를 두고 선택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통킹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핵심지역이었다.  그는 프랑스가 육군을 증원하고, 미군이 공중과 해상에서 지원하면, 통킹을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사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미군 사절단이 베트남 군대를 훈련시켜서 통킹 방어에 동원해야 한다고 그가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군부 내부에 베트남 개입을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고, 이를 주도한 것은 매슈 리지웨이 Matthew Ridgway 육군 참모총장이었다. 리지웨이는 베트남에서의 공군력 사용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는 결국 미군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그것도 대규모 파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펜타콘 계획자들에게 큰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미군은 이미 전세계에 군대를 파병한 마당에, 베트남에의 미군 지상군의 대규모 파병이 "중요하지 않은 지역에서의 위험한 전략적 낭비"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출처-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 726-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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