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디엔비엔푸와 공화당 베트남 정책의 딜레마?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디엔비엔푸의 프랑스 기지 위의 베트민 붉은 기>

도미노 이론을 신봉한 아이젠하워 정부로서는 베트남 공산화를 방관할 수 없었다. 베트남이 무너지면,공산주의로부터 인도차이나는 물론, 동남아시아 심지어 호주와 일본도 위험하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단독 개입할 수도 없었다. 의회의 지지를 장담할 수 없었고, 미국 대중의 지지를 보장할 수 없었다. 미국 의회 지지의 전제 조건은 영국의 공동 개입이었는데, 영국은 개입을 주저했다. 영국은 베트남 개입으로 중국을 화나게 만들면, 홍콩의 안전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1954년 상반기, 디엔비엔푸와 제네바 회담 개막을 즈음해서 아이젠하워 정부가 직면한 딜레마였다. 베트남을 포기할 수도 없었지만, 영국 없이 군사개입도 할 수 없었다. 당시의 미국이 만약 일방적으로 군사개입한다면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제네바에서의 협상을 선택한다면 유화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영국 외교정책이 유화주의에 오염되었다고 비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 총리는 윈스턴 처칠이요, 외무장관은 앤서니 이든이었다. 그들은 네빌 체임벌린의 정적이었다.)

또한, 1954년은 미국에서 상,하 양원 선거가 있는 해였다. 불과 2년 전의 대선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이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 넘겨주는 엄청난 실책을 저질렀고 (매카시즘의 자양분이 되었다), 해리 트루먼이 한국에서 벌인 전쟁은 불필요한 전쟁 “unnecessary wars” 이었고, 당시 자신들이 집권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미국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외교정책의 실패는 범죄적 어리석음 혹은 반역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은 공화당에게 외통수가 되었다. 한국전쟁의 포성이 제대로 멈추지도 않은 상황에서, 머나먼 아시아에서의 지상전에 불과 2년만에 다시 연루되는 것이 미국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가운데, 베트남을 공산주의 세력에게 넘겨주었다는 비난까지 감수하게 되면, 이는 54년 미국 총선에서 공화당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1954년 가을, 미국 공화당은 아시아 대륙의 공산주의 제국의 변두리에서의 끝모를 전쟁을 위해 미국의 아들들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유세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효과적 지원 없이, 아시아의 또다른 땅덩이가 공산주의 죽의 장막에 편입되는 것을 묵인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참고-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 703.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