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디엔비엔푸와 베트민의 고민?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4년 봄, 디엔비엔푸에서 승리할 즈음, 베트민은 북부의 통킹 대부분 지역을 군사적으로,실질적으로 지배했다. 핵심 지역인 홍강 3각주에서 인구의 80%가 베트민 지역에 살았다. 

만약 상대가 프랑스 뿐이라면, 베트민은 군사력만으로 프랑스를 몰아내는 방법을 채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트민이 베트남 독립을 위한 군사력의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 때문이었다.

베트민이 프랑스를 군사력으로 압박할 수록, 미국의 무력 개입의 위협은 더욱 높아졌다. 프랑스와 그의 베트남 협력자들을 패배시키는 것도 험란한 상황에서, 초강대국 미국을 분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부담이 상당했다. 

당의 주요 이론가인 쯔엉친이 54년 봄에 주장한 바는, "우리의 주적은 이제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제국이다."였다. "프랑스가 약해질 수록,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따라서 베트민은 프랑스를 몰아내면서도, 동시에 미국을 끌어들이지 않는 외교적 방안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외교적 모색의 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게 될 것이었다.  


참고-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66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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