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모택동의 중국과 영국 그리고 홍콩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9년, 장개석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은 혁명체제 답게, 홍콩의 운명을 혁명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홍콩이 중국에 넘어간 것은 과거의 적폐 세력이 맺은 불평등 조약 때문이라 주장할 수 있었다. 혁명 중국은 옛 제국주의의 적폐인 조약 파기를 선언하고, 아시아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언하면서, 홍콩을 무력점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택동은 영국과의 약속을 깨지 않기로 결정했고, 1997년까지의 홍콩의 운명은 이렇게 결정되었다.

그 결과로 모택동이 얻은 것은 영국의 승인이었다. 냉전의 시작단계에서, 거의 모든 서양 국가들이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국제적으로 왕따시킬 동안, 영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유일의 정통성있는 체제로 인정한 유일한 서양 강대국이었다. 영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한 것은 1950년이었고, 미국이 중국을 승인한 것은 20여년이 더 지난 다음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아시아의 냉전이 군사대결로 비화하는 가운데, 영국은 냉전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보다는 홍콩의 안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중국을 노골적으로 화나게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이 영국 정책의 방침이 되었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영국의 홍콩을 당분간 인정하기로 한 결정 덕분에, 영국의 외교 승인을 얻었을 뿐만아니라, 냉전의 적대 세력인 미국과 영국을 이간질 시킬 수 있는 카드도 얻었다. 영국은 미국의 봉쇄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수 없었고, 이는 홍콩 때문이었다.  
by 파리13구 | 2017/12/29 07:22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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