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한국전쟁과 베트남 그리고 영국의 홍콩?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동아시아의 냉전- 1950년 9월>


아시아의 냉전과 미국,영국,프랑스의 동상이몽.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동안,
프랑스는 중국이 이 참에 전선을 남부인 베트남으로 확대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한국과 베트남에서의 중국의 공세에 맞서, 영국은 중국의 여의주, 홍콩의 안전에 대해 고민했다.

1952년 초,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인도차이나 접경 지역에 250만 대군을 주둔시켰고, 그들 중 대부분이 한번의 명령으로 국경을 도하할 태세였다. 

물론, 미국 합참과 영국 정보당국은 중국이 이미 한국에서 국력을 많이 소진하는 상황에서, 전선을 인도차이나로 확대할 가능성을 낮게 보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에게 인도차이나에 대한 중국의 직접 군사개입 가능성을 경고했고, 특히 미국에게 대책을 요구했다. 프랑스는 미국에게, 중국의 침공시에 공군,해군 지원을 요청했다.

1952년 봄, 미국,영국,프랑스 3국은 아시아에서의 냉전 심화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미국 관리들은 중국의 침공에 대해서, 본토의 통신망에 대한 공습과 중국 해안 봉쇄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프랑스와 영국이 거부했다. 

프랑스는 자신의 전쟁 자원이 인도차이나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영국은 서양 3국의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으로 베이징이 보복 조치로 홍콩을 공격하거나 경제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이렇게 파리와 런던은 냉전의 긴장을 고조하거나,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지나치게 화나게 만드는 일은 자제하려고 했기 때문에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51년 10월에 총리직에 복귀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미국 냉전 전략의 군사화를 의문시했고, 대신에 동-서간의 협상을 강조했다. 처칠과 그의 외상, 앤서니 이든은 영국이 중국과의 새로운 갈등에 더 이상 연루되지 않는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영국은 홍콩을 걱정했다. 

참고-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 ,403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28 18:53 # 답글

    궁금한게 홍콩은 어떻게 버텨냈을까? 싶습니다. 문혁의 영향도 받았다고 합니다만, 냉전 시기의 홍콩이 버틴게.... 궁금하네요.
  • 파리13구 2017/12/28 18:55 #

    냉전동안,

    모택동이 자제심을 발휘한 무대가 홍콩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힘으로 점령할 수도 있었습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28 19:10 #

    자제심을 발휘한 게 이유였을 줄이야. 아주 단순한 이유이긴 한데... 순간 그 모택동이? 인민의 7천만 넘게 죽여버린 그가? 란 말이 나오네요. ㅎㄷㄷ
  • 파리13구 2017/12/28 19:25 #

    모택동에 대해 더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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