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인도차이나 전쟁과 모로코,튀니지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2년, 프랑스 의회에서 인도차이나 전쟁의 전비 부담을 더 이상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즈음,

프랑스 제국 소속의 모로코와 튀니지 상황이 악화되었다. 프랑스 제국의 재정에 베트남이 밑빠진 독이 되면서, 프랑스 본토 방위를 위한 재정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지, 특히 모로코와 튀니지에서 민족주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모로코 술탄 모하마드 벤 유세프 Mohammad Ben Youssef 가 독립을 요구했고, 튀니지 협상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자치를 요구하자, 협상이 결렬되었다. 

파리의 몇몇 당국자의 시각에서, 북아프리카 긴장 고조가 인도차이나로부터의 철수 이유가 되었다. 프랑스 의회의 급진파 지도자 에두아르 달라디에는 7000명의 프랑스 장교와 32000명의 부사관 그리고 134,000명의 병사들이 베트남에 발목을 잡힌 이상,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수적인 열세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1952년 1월)

다른 한편, 베트남 철군 반대론자들은 베트남으로부터의 조기 철군이 마그레브(북아프리카)에서 민족주의 열광을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  "만약 베트남이 독립을 쟁취한다면, 왜 우리는 못하는가? " 프랑스 제국의 보존을 위해서, 프랑스가 베트남에 남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 ,401-402.



덧글

  • 까마귀옹 2017/12/26 21:16 # 답글

    그러고 보니 프랑스가 식민지 중에서도 굳이 북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알제리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가 뭘까요? 실질적인 이득 외에 어떤 상징성이 있는 겁니까?

    영국이 '인도 제국'에 집착한 이유는 이해가 가는데 프랑스의 이 집착은 이해가 잘 안되더군요.
  • 파리13구 2017/12/26 21:23 #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 출신 정착민이 많아서,

    알제리 포기는 많은 프랑스 시민의 재산 및 거주권의 부정이 되기 때문에,

    피에느와(프랑스 거주민)이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제국의 철수에서 본토민이 많은 경우와 없는 경우가 중요한데

    전자에서 철수가 어렵다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용이합니다.

    알제리는 프랑스로 철수해야 하는 사람이 많아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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