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미국이 프랑스에게 핵무기를 제공했나?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4년 5월 베트남에서의 프랑스와 베트민의 디엔비엔푸 전투는 두 나라와 냉전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패배로 인해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2014년의 영국 BBC보도에 따르면, 패전의 위기 속에서 미국이 프랑스에게 핵무기 사용을 제안했다고 한다.

[Dien Bien Phu: Did the US offer France an A-bomb?]

"핵무기 2발이면 어때요?" 

이는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 John Foster Dulles 가 프랑스 외무장관 조르주 비도 Georges Bidault 에게 1954년 4월에 제안한 것이었다.

54년 4월, 디엔비엔푸의 비관적 전황 속에서, 미국은 베트남 개입을 고심했다. 4월 3일, 덜레스는 승인을 위해서 의회 지도자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영국의 참여 없이는 미국의 개입을 승인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에 아이젠하워가 윈스턴 처칠에게 디엔비엔푸 함락이 서양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라 강조하면서, 영국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덜레스가 파리에서 조르주 비도에게 전핵무기 제공을 제안한 것은 바로 그 즈음이었다.

하지만, BBC 기사에 따르면, 덜레스 국무장관의 제안은 프랑스측 기록에 따른 것이지만, 실제로 실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했다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패전에 위기 속에서 당황한 프랑스 외무부가 덜레스의 의도를 오해했거나, 혹은 그의 발언이 통역 중에서 오역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전직 프랑스 외무장관 모리스 슈망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실제로 전술핵을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전술핵을 제안한다고 의견을 물어본 것 뿐이다. 그는 핵무기라는 무서운 단어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비도는 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가 로지벌에 따르면, 덜레스는 일반적 관점에서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타진한 것 뿐이었다. 베트민 거점에 대한 2 -3발의 전술핵 공격에 대한 프랑스의 생각을 물어본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도가 거절했다. 왜냐하면 전술핵 사용으로 베트민을 제거할 수 있지만, 프랑스군 진지도 역시 초토화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전술핵 사용도 거부되고, 영국이 개입을 거부했기 때문에, 미국은 디엔비엔푸의 프랑스를 돕기위해 개입할 수 없었다.


고립무원 속에서, 1954년 5월 7일, 결국 56일 동안 포위된 프랑스 군이 항복했다. 프랑스 군은 1142명이 죽고, 1606명이 실종,4500명이 부상당했고, 베트민 희생자는 22,000명에 달했다.

디엔비엔푸 패배의 충격 속에서, 1954년 프랑스는 자제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고,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는 자체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전략적 결론에 도달했다. 

그 놈의 프랑스의 '자신감' 이란!! ㅠㅠ




덧글

  • 까마귀옹 2017/12/21 16:29 # 답글

    아...저 '자신감'....... 훗날 드골이 프랑스의 핵개발에 대해 주장한 발언들을 보면 정말 프랑스의 '자신감'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 파리13구 2017/12/21 17:47 #

    ^^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21 20:10 # 답글

    프랑스의 자신감은 나쁜 건지, 좋은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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