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식민지 문제에 대한 루스벨트와 처칠의 갈등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1년 8월 14일,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이 만나서, 전후 세계를 위한 연합국의 목표를 논의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대서양 헌장이었고, 그 3조는 다음과 같았다. 셋째, 양국은 모든 국민이 그 속에서 영위할 정부 형태를 선택할 권리를 존중한다. 또 양국은 강압적으로 빼앗겼던 주권과 자치 정부를 인민들이 다시 찾기를 원한다.

회담에서 처칠에게, 루스벨트는 안정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후진국 개발을 위한 공약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스벨트가 거듭 강조한 것은 "우리는 파시스트 노예제에 반대하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 동시에 세계의 모든 민족들을 후진적인 식민 정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왜 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영제국을 염두에 둔 처칠은 루스벨트의 논리에 반대했지만, 유럽의 전쟁에서의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서 소극적으로만 반대했다. 

회담의 최대 성과가 바로 대서양 헌장이었고, 모든 국민이 자신이 사는 곳의 정부 형태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했다. 

루스벨트는 대서양 헌장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며, 단지 독일과 일본 제국 식민지 뿐만아니라, 모든 식민지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간주했다.

하지만, 처칠은 의회 보고에서, 헌장은 독일에 의해 정복당한, 이전에 자치 정부를 가졌던 유럽 민족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처칠은 대서양 헌장이 대영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참고-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77.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19 19:03 # 답글

    점점 루스벨트는 서유럽 국가들을 향해 비판적인 시각을,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 보존과 재확보를 위해 애쓰는군요. 전후 루스벨트가 살아있었.... 아, 대통령 5선은 지나치죠. 전쟁 종결이 1945년 이었으니. 전후에 루스벨트의 비전이 이뤄질려 해도, 윌슨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참... 루스벨트는 복잡한 인물이네요.

    루스벨트 평전이나 찾아봐야 겠군요. 물론 좌파든, 우파든 공평하게만 한다면 좋지만요. 한국어로요. 제대로 된 루스벨트 평전이 있는지 장담 못하지만요.
  • young026 2018/01/14 21:43 #

    5선을 했으면(그리고 안 죽었으면) 1952년까지 대통령이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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