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프랑스 식민통치는 무엇을 가르쳤나?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유럽전선에 동원된 프랑스 인도차이나인들-제1차세계대전>

프랑스 제국은 베트남에 문명화의 빛을 제공하기 위해서 식민 지배를 한다고 주장했다.

문명화를 위한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 교육이 이후의 민족주의 운동에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프랑스 당국은 베트남인들에게 볼테르,루소,빅토르 위고를 가르쳐서 어떤 교육 효과가 나오기를 원했던 것인가?

20세기 초부터,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베트남 민족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프랑스가 강요한 교육이 베트남 민족주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프랑스 식민 교육당국은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프랑스식 교육으로 대체하려 했다. 그리고 프랑스 교육은 베트남에서의 식민지 통치 사업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프랑스 교육에는, 독재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 인민주권에 대한 장 자크 루소의 옹호, 그리고 자유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주장이 포함되었다. 이 교육이 몇몇 베트남인들에게 마음 속의 의혹을 키우게 만들었다. 그들은 친불 반식민주의자 Francophile anticolonialist 가 되었다. 말하자면 프랑스 교육은 일부 베트남인들에게 왜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저항해야 하는지 이론적 의구심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초기의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1904-1905년의 러일전쟁이었다. 러시아에 대한 일본의 승리는, 유럽세력에 대해 아시아인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1907년, 이러한 사태에 당황한 프랑스 식민 당국은 베트남인들에게 혁명과 반란의 이론이 성횡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프랑스 당국은 민족주의 탄압에 돌입, 다수의 지도자들이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그들이 일본에서 배운 것은 반불 사상이었다. 또한 식민지 감옥은 민족주의의 선전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당국은 잠시동안 민족주의 선동을 통제하는데 대체로 성공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프랑스 식민당국은 인도차이나 안전에 자신할 수 있었고, 단지 2500명의 유럽인들이 유럽의 전쟁을 위해 떠났을 뿐이었다. 


출처-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 28-29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18 19:38 # 답글

    이래서 식민지 문명화론, 수혜론 같은 게 불가능하죠. 그럼 자기들이 원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으니까요. 불행하게도 20세기 초반에는 식민지 문명화론, 문화제국주의, 수혜론이 당연했죠. 그리피스 같은 한국 전문가(한국에 딱 한 번 옴)는 1927년 방문에 화려한 아침의 나라가 되었다고 일본의 통치를 기뻐했다는 것처럼요. 이 시대를 들여다보면 불편함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연구해야 하죠. 물론 있는 그대로 연구하고 예기하면 욕 얻어 먹을 확률이 많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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