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프랑스 인도차이나 지배의 논리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극동에서 식민지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은 프랑스의 국력 신장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의 프랑스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경쟁 제국주의 세력인 대영제국이 영토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을 막기위한 것이기도 했다. 

코친차이나 위원회 (인도차이나 특위) 는 1857년에, "이번 원정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서양 국가들이 극동을 향한다는 상황의 압력의 산물이다. 영국,네덜란드,스페인 그리고 심지어 러시아 마저도 이 지역에서 세력을 구축하는 마당에, 우리 프랑스가 이 지역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세력이 되라는 것인가?"

해안선을 따라, 중국 동부에서 영국이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프랑스 계획자들은 그의 관심을 남쪽으로 돌려서, 남중국해의 베트남 해안에 관심을 가졌다. 1865년 마르세유 상공회의소는 프랑스의 목표가 "사이공을 프랑스의 싱가폴로 만드는 것"이라 선언했다.


출처-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 25





덧글

  • 까마귀옹 2017/12/18 13:05 # 답글

    그러고 보니 프랑스가 왜 베트남의 기존 중심지인 하노이나 후에가 아닌 남부의 사이공을 굳이 중요시한 이유가 궁금했었죠.
  • 파리13구 2017/12/18 13:06 #

    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18 19:35 # 답글

    남중국해의 베트남 해안, 사이공을 프랑스의 싱가폴. 나중에 이 곳은 보트피플의 현장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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