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과 주은래 그리고 파리13구?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호치민- 당시의 가명은 응우옌 아이꾸옥>

1919년 훗날 베트남 공산주의의 지도자가 되는 호치민('계몽자'라는 뜻)은 베르사유 강화회담 참석을 시도했다. 당시의 그의 가명은 응우옌 아이꾸옥('조국을 사랑하는 사람', 阮愛國)이었다. 회담에서 호치민은 베트남 대표 자격으로 미국의 우드로 윌슨을 만나서, 베트남 독립을 청원하려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이후 부터, 호치민은 프랑스 보안경찰 Sûreté Générale 의 감시대상이 된다. 경찰 당국은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가 작성한 편지와 기고문을 압수했으며, 하노이의 식민지 행정당국에 그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은밀한 선동꾼은 누구인가? 그는 어디 출신인가? 왜 그의 이름이 프랑스에 입국한 인도차이나 입국자 목록에서 없는가?


19년 가을, 보안경찰 당국은 호치민의 신상에 대해 대략 파악했다. 그는 베트남 중북부 지방의 응에안 성 출신이며, 수년 동안 해외를 떠돌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런던에서 보냈다. (1913년부터 1919년 무렵 그는 런던의 서 에일링에 체류하였다.) 그는 파리의 베트남 출신 공동체에서 아는 사람이 많고, 그들 대부분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호치민은 당시 청원을 위해 파리에 있었던 아일랜드와 한국 출신 애국자들과도 접촉을 유지했다. 생계를 위해서 호치민은 사진 편집과 잡지 관련 일을 했다.


1920년 초부터, 프랑스 보안경찰은 파리13구의 데 고블랭의 6 빌라 6 Villa des Gobelins 의 그의 집을 감시했다. 호치민은 1923년 말까지 파리에서 체류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동네인 파리13구에서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의 또다른 두목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은래는 1920년 11월부터 1924년 6월까지 프랑스에서 체류했다. 특히 1922~1924년 주은래는 파리13구의 이태리 광장 부근의 Godefroy라고 하는 작은 골목에 있는 여관에서 살았다. 


호치민과 주은래는 20세기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이 1920년대 초에 파리13구에서 한동안 같은 구역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살았던 장소는 이태리 광장을 중심으로, 도보로 10분 내의 거리에 있었다.  


참고-

Fredrik Logevall, Embers of War: The Fall of an Empire and the Making of America's Vietnam,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 Reprint edition (January 14, 2014).22-23.

<모택동과 호치민 그리고 주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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