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앙리 나바르와 웨스트모어랜드의 공통점?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앙리 나바르>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의 앙리 나바르와 미국의 웨스트모어랜드는 각각 두 나라의 전쟁을 막다른 벼랑으로 이끌었다.

두 지휘관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각자의 전쟁의 벼랑끝에서 전쟁의 승리를 장담하는 지나친 낙관을 보여주면서, 자국의 여론에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1953년 5월, 디엔디엔푸의 패전을 1년 여 앞두고, 베트남 주둔 프랑스군 총사령관 앙리 나바르 Henri Navarre 는 "이제 우리는 베트남에서의 승리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마치 터널 끝의 불빛 처럼 말이다." 

당시 프랑스는 1946년 이래 베트남의 공산주의 게릴라와 피비린내나는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식민 통치를 재개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1953년 5월, 인도차이나 주군 프랑스군 사령관에 임명된 앙리 나바르는 이른바 나바르 계획을 통해 전세 역전을 도모했다. 미국의 자금 지원을 이용, 나바르는 프랑스 연합국 국가에서 9개 대대의 토착군을 육성하여 공세를 하려고 계획했다. (나바르 계획) 나바르는 이것을 군대의 황인종화라 불렀고, 이 군대를 베트민과 싸우게 만들려고 했다. 

[Robert D. Schulzinger, A Time for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41–1975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pp.73-74.]

지휘권을 승계하자마자, 나바르는 프랑스의 전쟁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했고, 특히 북부에서의 문제를 절감했고, 베트민에 대한 대규모 공격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53년 여름의 프랑스의 전쟁 성과는 프랑스의 무능을 다시 증명해 줄 뿐이었고, 베트민의 전술에 대한 프랑스 대처의 무능을 재확인했다. 결국 1954년 5월에 프랑스가 디엔비엔푸에서 베트민에게 대패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였다.

디엔비엔푸 이후 프랑스가 물러난 자리에서, 프랑스의 역할을 대신한 것은 미국이었지만, 미국도 프랑스와 유사한 문제에 시달렸다. 처음에 미국은 자신이 프랑스와는 다르다는 자심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미국은 프랑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믿음이 존재했다. 

1967년 말에, 주월 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가 "우리는 중요한 지점에 도달했고,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은 미국의 기존 자신감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1968년 1월 29일의 테트 공세는 전쟁에 대한 웨스트모어랜드의 낙관이 신기루에 불과함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미국 대중이 전쟁에 대해서 더욱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환멸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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