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미국 국무장관,장개석의 중국에 대한 기대?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4년 12월에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가 코델 헐 후임으로 국무장관이 되었다. 신임 장관은 루스벨트와의 대화 이후, 대통령의 전후 아시아 정책의 핵심을 요약했다.


"우리 정책은 현재의 중국의 약점과 혁명과 내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4억 5천만 인구의 중국인들이 언젠가는 통일되어, 현대화하고, 전체 극동 지역에서의 가장 중요한 세력이 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중국이 언젠가는 일본이 점령하려 한 지역에서 지도력을 행사할 것이다."

-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Edward Stettinius Jr.

미국 국무장관

1945년 초

출처-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Columbia University,New York,1987. 124-125.


태평양 전쟁과 더불어, 동아시아를 군림하던 2개의 제국 세력의 퇴출이 예견되었다. 유럽 제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와 일본 제국

제국의 후퇴에 따른 힘의 공백을 메우고,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안정을 위해서, 미국의 루스벨트는 장개석의 중국에 기대를 걸었다. 

루스벨트는 본래, 인도차이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와 중국에 대한 홍콩 반환 등을 추진하려 했고, 이는 전후 아시아에서의 "강한 중국"의 탄생을 위해서 였다.

하지만, 장개석이 중심이 되는 강한 중국은 한 여름 밤의 꿈이 될 운명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영국은 강한 중국의 탄생에 반대했고, 특히 중국의 여의주 홍콩의 반환에 강하게 반대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도 인도차이나가 중국의 영향권이 되는 것에 반대했다.  

결국, "강한 중국" 이 아니라, 적대 세력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장개석이 대만으로 쫓겨나게 되면서,

전후 아시아의 역사는 격동의 세월의 도래를 예고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씨앗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이 항복하면서, 아시아에는 평화가 아니라 큰 혼란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13 18:49 # 답글

    결국 중국은 장개석이 낫지 않았나... 우리나라로서는 장개석이 나았나, 모택동이 나았나. 강한 중국을 생각하면 장개석이지만,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어떤 중국이 나았을가 싶네요. 처칠-드골로서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 등. 장개석을 지지하지 그랬... 모르겠습니다. 이 분야는 더 공부해야겠네요. ㅜㅜ
  • 파리13구 2017/12/14 02:50 #

    장개석 지못미 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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