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베트남을 둘러싼 미국과 영국-프랑스의 갈등?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동맹 속의 갈등.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영국,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는 연합국 동맹세력이었지만,

베트남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대립했다.

1943년, 미국 대통령이 루스벨트의 인도차이나 관련 발언은 프랑스의 샤를 드골을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1943년>

1월 초,
루스벨트, 태평양 전쟁위원회 발언
프랑스에게 식민 영토가 반환되어서는 안 된다.
 

2월 22일
헐 국무방관, 웰스 차관과 루스벹트의 회의
프랑스의 지위의 불확실성에 대해 언급한 이후, 루스벨트는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잃을 것이지만, 그 처리방법이 문제이다."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Columbia University,New York,1987.p.71.

7월 21일
루스벨트, 태평양전쟁 위원회 the Pacific War Council 회의 발언

 “인도차이나는 전후에 프랑스 제국에 반환되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인은 그곳에 거의 100년을 머물렀지만, 그 곳의 대부분의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 단지 1실링을 투자해서, 그곳에서 1파운드를 뽑아냈다...우리는 인도차이나의 3천 5백만 인구를 도와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즉시 독립을 제공할 수는 없고, 그들이 자치 능력을 가지게 될 때까지 돌봐야 한다. 1900년에 필리핀인들은 독립할 준비도 되지 않았고, 그들이 언제 독립을 할 수 있을지 그 때를 확정할 수도 없었다. 우선 그들을 돌보기 위한 공공 사업을 해야만 했다. 민중은 지역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마지막으로 정부 일을 배워야 했다. 마침내, 1933년, 우리는 필리핀인들과 만나, 1945년에 그들이 독립을 위한 준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란 시기를 확정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 (필리핀에서) 발전을 이룩해 내었기 때문에, 인도차이나의 경우에 통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인도차이나를 신탁국으로 관리할 것이다. 신탁이란 단어는 여러 언어에서 심지어 번역할 단어 조차 없다. 신탁이란 소유자의 이익을 위해 관리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MARK BRADLEY, Franklin Roosevelt, Trusteeship and US Exceptionalism: Reconsidering the American Vision of Postcolonial Vietnam, in Marilyn B. Young and Robert Buzzanco(eds.), A Companion to the Vietnam War, Wiley-Blackwell (January 23, 2006),pp.131-132.

이상의 루스벨트의 발언에 대해서 역시나 대영제국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영국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루스벨트가 영국의 인도에 대해서도 유사한 주장을 한다면???] 

루스벨트의 발언을 분석하면서, 영국 외무부 소속의 극동문제 전문 학자인 제프리 허드슨 Geoffrey Hudson은 이를 루스벨트의 독특한 관심 탓으로 돌렸다. 즉 루스벨트는 자신의 반식민주의 신조를 실천하기 위해서, 적어도 아시아의 유럽 식민지들 중 한 곳의 청산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허드슨은 인도차이나에 대한 루스벨트의 지식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뿐만아니라 그가 신탁통치는 공염불에 불과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결국 인도차이나에 대한 중국의 지배로 귀결될 것이라 주장했다. 

1943년 말의 카이로와 테헤란 회담을 준비하면서, 영국 외무부는 인도차이나에 대한 영국 정책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작성자는 극동국 국장인 애슐리 클라크 Ashley Clarke 였다. 

11월 22일의 보고서는 아시아의 전후 안보를 위해 인도차이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프랑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인도차이나의 안보적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영국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유럽과 아시아의 강력한 프랑스가 부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영국은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반환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고, 프랑스를 약하게 만들거나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인도차이나에 대한 루스벨트의 전후 계획은 프랑스를 약화시키고, 중국만을 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이는 또한 일본의 계략에 놀아나는 것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결론적으로 인도차이나에 대한 영국의 정책 목표는 전후의 안정에 있고, 이를 위해서는 프랑스,미국,영국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었다.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Columbia University,New York,1987,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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