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구상의 한계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태평양 전쟁 동안, 미국은 유럽의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혼란에 빠진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한 전후 구상에 고심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을 위한 전후 구상을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고, 지역 전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전쟁 중 미국 국무부에는 지역 전문가가 부족했다. 

전쟁 이전에, 미국 국무부는 동아시아 식민지에 대한 정보를 식민통치세력인 영국,프랑스,네덜란드측 정보에 의존했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 대한 주요 정보를 다루는 부서는 국무부의 유럽국 Division of European Affairs 이었고, 극동국 Division of Far Eastern Affairs  이 아니었다.

당시의 국무부 극동국은 아시아의 일부 독립국가들을 담당했고, 주로 필리핀 문제에 집중했다.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Columbia University,New York,1987. 62.

이는 미국의 전후 인도차이나 정책 구상 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인도차이나 정책을 둘러싼, 미국 국무부 내부의 유럽국과 극동국의 대립은

인도차이나 전쟁을 냉전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식민통치의 연장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아야 하는 가를 두고

미국 정책의 혼선의 뿌리가 되었다. 

전후 동아시아 문제를 유럽의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아시아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정책 프레임 전쟁이었던 것이다. 



덧글

  • 까마귀옹 2017/12/11 19:42 # 답글

    미국 외교의 고질적인 문제인 '바보짓'의 근원이 이 부분일까요?
  • 파리13구 2017/12/11 19:46 #

    40년대의 경우는 미국이 이전 10년동안의 고립주의 때문에,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희박했던 탓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11 23:51 # 답글

    태평양 이후의 제국주의 국제질서 개편이 필요했습니다. 세계질서, 동아시아 국제질서 개편을 위해 지역학을 활용한 게 1940년대니...(지역학을 만들었나?) 전후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개편을 위해 연구했죠. 기관과 대학에 맡겨 보고서들이 나왔고. 이 나라는 독립 국가로 유지했는가? 의지와 노력은? 독립 이후의 분쟁 없이 국가를 통치할 능력은? 우리나라는 신탁통치 결과로 나왔으나...

    1940년대 보다 일찍 지역학이 만들어져서 국제문제와 관심이 높아졌더라면 달라졌을 겁니다. 아니죠. 아들 부시와 존슨-닉슨 베트남, 중남미를 떠올려보면... 안구에 습기가 가득찹니다.
  • 파리13구 2017/12/12 04:51 #

    흐흑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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