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태국, 미국,영국에 선전포고..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일본군과 손잡은 태국 군인들- 1942년 1월>

1942년 1월 25일 일본의 압력하에서 태국이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 했다.

1939년 9월 유럽에서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태국은 중립을 선언했다. 이것이 프랑스와 영국을 실망시켰다. 영불 양국은 태국의 주위에 식민지를 보유했는데, 태국이 연합국의 전쟁을 지원하기를 원했고, 일본이 자신의 태평양 식민지를 공격을 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협조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태국은 그 반대로 행동했다. 태국은 일본과 우호관계를 맺으며, 학교 교과서에 중국까지 영토가 확장된 "대-태국" “Greater Thailand” 지도의 청사진을 실었다.

태국의 연합국과의 갈등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의 항복 이후였다. 태국은 프랑스의 몰락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의 영토 분쟁의 해결을 위한 호기로 삼았다. 비시 정부가 태국 정부의 요구를 거절하자, 태국 군대가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군대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 일본이 개입하여 중재에 나섰고, 일본은 태국 편을 들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영토 일부가 태국에 할양되었다.

진주만 기습 이전까지 태국은 연합국 편도 일본 편도아닌 중립을 고수했다. 

진주만 기습과 더불어, 12월 7일, 일본이 태국 정부에 최후통첩, 일본군이 태국을 통과할 권리를 주장했다. 태국 정부에 답변을 위해 2시간을 주었지만, 태국 정부는 답을 하지 않았다.

12월 8일 일본군이 태국을 침략했다. 일본군과 태국군이 교전한지 몇 시간 만에, 태국 정부가 마침내, 일본군이 태국을 경유, 버마와 말레이시아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1942년 1월 태국이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한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상황에서 였다.  



덧글

  • 라라 2017/12/11 19:54 # 답글

    정명가도와 비슷한 요군데 금방 굴복했군요.
    태국 여행갔을 때 들으니 식민지 안된 거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던데 비시 프랑스 정부와 싸우기도 한 건 신기하군요.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하긴 미래가 어찌 될지 몰랐을테니
  • 케모노 2017/12/12 06:55 # 삭제 답글

    압력 하에서라고 하니까 그 태국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이 들리는 군요. 종전하고도 쭉 권력을 이끌어 나간 사람인데.
  • 라라 2017/12/12 17:52 # 답글

    아 그러고보니 국왕 죽이고 미국 유학 중이던 동생 불러 왕 시킨게 이 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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