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태국-비시 프랑스 전쟁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0년 6월, 제2차세계대전의 프랑스 전투에서, 프랑스 본토가 나치 독일에 의해 유린당한 것에서 절호의 기회를 발견한 것은 일본 제국만이 아니었다. 

40년 9월. 일본, 나치의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를 압박, 인도차이나 보호권을 얻어낸 후, 인도차이나 북부를 군사력으로 점령했다.

태국도 인도차이나에서 행동에 나섰고, 그 결과가 태국-프랑스 전쟁이었다. 1940년 10월에 시작되었다. 태국은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비시 정부가 일본 제국의 군사 점령에 저항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이후 행동에 나선 것이다. 

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간에는 분쟁 지역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프랑스는 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간의 영토분쟁 협상에서 약간의 양보만을 했을 뿐이다.  

40년 6월의 프랑스 패망과 더불어, 당시의 태국 군사독재자 총리 피분 송크람 Plaek Pibulsonggram 이 이것을 과거에 프랑스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포착했다. 

본토의 패망으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포함한 해외영토의 유지가 곤란했다. 프랑스 인도차이나 정부는 본국의 지원 없이, 자체의 힘만으로 태국을 상대해야 했다. 

40년 9월, 일본이 별다른 저항없이 인도차이나 북부에서 군사 기지를 건설하는데 성공하자, 태국의 피분 송크람은 태국의 공세에도 프랑스가 심각하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군사행동에 돌입했다.

전쟁은 1941년 5월에 일방의 결정적 승리 없이 끝났다. 

일본이 태국과 프랑스 전쟁의 중재자로 나섰다. 일본이 중재로, 프랑스 인도차이나는 분쟁 지역을 태국에 양도했다.  

프랑스가 태국에게 넘긴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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