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태국의 위상?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대부분의 아시아가 기존의 유럽 제국주의와 새로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태국의 국제적 위상은 주목할만 하다.    

태국은 1902년 이래 하버드 대학 로스쿨 졸업생 출신이 대부분인, 미국인 왕의 수석 자문관의 국정자문을 받아왔다. 미국인 자문관들은 태국 외교관계 발전에 기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태국은 연합국 측으로 전쟁에 가담했고, 전후의 파리 평화회담에 대표를 보냈고, 국제연맹의 회원국이 되었다. 파리에서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서양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태국의 호소를 받아주었다. 

1920년, 미국이 선도적으로 치외법권을 포기했고, 태국의 관세 주권을 인정했다. 미국과의 조약 개정을 모델로 해서, 1924년 태국 정부는 미국인 자문 프랜시스 세이어 Francis B. Sayre를 유럽 각국으로 보내서, 불평등 조약을 수정하기 위해 협상했다. 세이어는 우드로 윌슨의 사위였다. 1년 동안 ,세이어는 영국,프랑스를 포함, 다른 유럽 7개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을 협상했다. 마침내 1927년, 태국은 재정,법적 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 공로로, 세이어는 헤이그 국제 중재재판소의 태국 대표로 일했다.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Publisher: Columbia University. Place of publication: New York. Publication year: 1987.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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