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 공세]웨스트모어랜드의 허무한 약속?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사진- 테트 공세 직후에 베트콩에게 공격받은 미국대사관- 공세 직후에 미군 병사가 대사관 담벽에 난 구멍을 응시하고 있다. 1968년 1월>

1968년 1월의 테트 공세 공방전은 미군과 그의 동맹 월남군이 군사적으로 승리했지만, 심리적으로 참패한 사건이었다.

테트 공세 이후, 민족해방전선의 무력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 살육과 문명, 푸른숲,2002.p.664.]

나머지 전쟁 동안 베트콩 게릴라는 더 이상 효율적 무력이 되지 못했다. 거의 모든 전투는 북베트남의 정규군에 의해 수행되었다. 

[Kissinger, Henry, Ending the Vietnam War: A History of America's Involvement in and Extrication from the Vietnam War, Simon & Schuster (February 11, 2003),p.46.]

민족해방전선의 희생, 특히 2, 3단계의 공세에서의 희생이 엄청났다. 

[Marilyn B. Young, The Vietnam Wars, 1945–1990 (New York: Harper Perennial, 1995),p.250.]

미국측의 군사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테트 공세가 미국과 미국의 여론에 충격을 준 것은 

미국이 곧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믿음에 치명타를 가했기 때문이었다. 

주월 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는 테트 공세 이전에 미국이 곧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린든 존슨이 1965년 미국의 지상군 개입을 대거 늘린 이래, 웨스트모어랜드는 미국과 그의 동맹 월남이 1966년에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었다. 적은 1967년에는 모두 소탕될 예정이었고, 1968년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날 것이라 웨스트모어랜드는 주장했다.

67년 주월 미군의 수는 50만 명에 달했지만,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의 저항과 전쟁의지는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Robert D. Schulzinger, A Time for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41–1975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286]

베트남의 전황에 대한 장밋빛 낙관론이 지배적인 가운데 발생한 테트 공세는 미국인들에게 월남에서의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론조사] 갤럽 조사에 따르면 테트 공세 전후의 미국 여론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67년 11월, 웨스트모어랜드의 낙관적인 전망에 따라 응답자의 50%가 미국이 전쟁에서 진전을 이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테트 이후, 전쟁에 대한 긍정 여론은 33$로 하락했고, 49%는 미국이 애초에 이 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되었다고 응답했다. 

[Marilyn B. Young, The Vietnam Wars, 1945–1990 (New York: Harper Perennial, 1995),p.254.]

그리고, 3월 10일,

뉴욕타임스, 웨스트모어랜드가 206,000명의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고 보도하자,

베트남 전황에 대한 미국인의 비관적인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3월 22일에 베트남전쟁 확전의 장본인 린든 존슨이 웨스트모어랜드의 요청을 거절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웨스트모어랜드의 전황 인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헨리 키신저는 이미 1966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헨리 키신저는 1966년 7월, 전황의 관측을 위해서 베트남을 방문했다.그의 주월 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를 만나서 환담하고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작년에 웨스트모어랜드가 나에게 현재 수준의 무력 증강을 주장했는데, 지금와서 그가 다시한번 새로운 수준의 무력 증강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작년에, 그는 나에게, 만약 그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다면, 1년 혹은 2년안에 승리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말하는 것은, 현재의 군사력으로, 패배를 면할 수 있지만, 그는 매우 느린 전황의 진전 이외에는 어떤 것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키신저의 일기 중에서

1966년 7월 21일

[Niall Ferguson, Kissinger. Volume 1, The idealist, New York : Penguin Books, 2015.pp.680-681]

테트 공세는 베트남 전쟁의 고질병이었던 신뢰도 격차를 확인한 것이었다.

즉 신뢰도 격차란 정부의 전황 발표와 실제 전장의 현실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국민이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테트 이전 미국인은 베트남 전쟁이 곧 승리로 끝날 것이라 믿었지만, 테트 이후, 정부의 전쟁 정책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면서 반전 여론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by 파리13구 | 2017/12/07 11:13 | Le monde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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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무지개빛 미카 at 2017/12/07 17:11
어찌보면 월맹의 보응 우옌 잡 장군이야말로 현대적인 여론,메스미디어 전쟁이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일것이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Commented by 명탐정 호성 at 2017/12/07 17:29
이래서 보도통제를 하는구나
Commented by 터프한 얼음대마왕 at 2017/12/07 20:01
프로파간다와 여론, 미디어를 활용한 무사운 사례네요. 정치까지 결합된다면 전쟁의 향방은 더더욱...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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