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웨스트모어랜드와 적군 시체 놀음?
베트남 전쟁의 전과 부풀리기...

<주월 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


1965년말부터 1967년말까지 베트남의 전쟁은 점점 미국화되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는 정해진 전선이 없었다. 영구적으로 점령할 영토도 없었다. 

미군들은 아침에 헬기를 타고 출동, 오전 오후에 베트콩 혹은 북베트남 군과 교전하고, 저녁에는 기지로 귀환하는 식의 전쟁을 했다. 미군이 싸우고 돌아간 자리에는 얼마후 적이 다시 출몰하곤 했다.

베트남 주재 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의 전쟁에서 전황 개선의 지표는 적 전사자 수였다. “body count” of soldiers killed

하지만, 적 전사자 수 자료가 정확한 적 전사자 수를 반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전투에서 적 전사자 수를 많이 배출한 장교들이 포상되었다. 

때로 장교들은 다음 날 전투에서의 적 전사자 수를 알고 있었다. 냉소적 기자들은 "미국 병사들은 조명등을 들고 밤새도록 적 전사자 수를 세었다." 적 저격병의 위협 속에서 말이다. 

적의 시체의 수가 중요했기 때문에, 미군 병사들은 적인지 확인하기 전에 먼저 쏘고 보는 기질을 가지게 되었다. 

한 해병은 " 밤에 나다니는 베트남인이 '적' 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또 다른 병사는 "죽은 베트남인은 베트콩이었다."고 증언했다.

Robert D. Schulzinger, A Time for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41– 1975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p.214.


by 파리13구 | 2017/12/06 13:08 | Le monde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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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찻잔속의 여러 이야기들이 들리.. at 2017/12/06 20:42

... http://kk1234ang.egloos.com/3077816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말한 저거...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총알낭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베트콩들이 워낙 신출귀몰하고 하다보니...저런 조치가 ... more

Commented by 터프한 얼음대마왕 at 2017/12/06 19:48
진짜... 베트남 전쟁은 미쳐도 살아남을 수 없는 전쟁 같습니다.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7/12/06 19:49
지옥의 묵시록입니다..ㅠ
Commented by 명탐정 호성 at 2017/12/06 20:12
그래도 만일 미국이 북 베트남을 폭격했다면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겠지만
제3차 세계대전이.... 큰일이군요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7/12/07 09:22
한국전쟁의 기억과 모택동이 중국 때문에

북침은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Commented by 뽀도르 at 2017/12/07 09:28
전과는 항상 과장되기 마련인데 거기에 민간인 피해까지 ㅠ.ㅠ 2차대전 공중전 기록을 봐도 격추주장과 실제 격추는 하늘과 땅 차이더군요 미군이나 일본군이나.....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7/12/07 10:38
베트남이 지독했던 것은

민간인과 적군이 외관상으로 구분이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죽이고 보자...ㅠ
Commented by ㅏㅏㅜㅇ at 2017/12/07 15:37
이건뭐 중세에 귀나 코를 베어오면 전과로 인정하는 수준의 기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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