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루스벨트, 전후 인도차이나 처리 방침? Le monde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후의 인도차이나 처리 방침을 밝혔다. 
전후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식민주의가 부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위해 "강한 중국"을 주장하면서, 영국령 홍콩의 중국 반환도 주장했다.
전쟁 중에 루스벨트는 아시아에서의 프랑스,영국의 식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유럽 제국주의 반대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의 전통을 지켜내야만 했다. 

전후 아시아에서의 유럽 제국의 유지 문제를 두고,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대립했다. 

이런 대결 구도 속에서, 장개석이 난감한 상황이었다. 장개석은 국내에서 모택동이란 주적과 싸워야 했지만, 전후의 강한 중국의 탄생을 방해하려 하는 영국의 처칠과도 대립해야 할 처지였다. 

<1943>

 

721


루스벨트, 태평양전쟁 위원회 the Pacific War Council 회의 발언


인도차이나는 전후에 프랑스 제국에 반환되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인은 그곳에 거의 100년을 머물렀지만, 그 곳의 대부분의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 단지 1실링을 투자해서, 그곳에서 1파운드를 뽑아냈다...우리는 인도차이나의 35백만 인구를 도와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즉시 독립을 제공할 수는 없고, 그들이 자치 능력을 가지게 될 때까지 돌봐야 한다. 1900년에 필리핀인들은 독립할 준비도 되지 않았고, 그들이 언제 독립을 할 수 있을지 그 때를 확정할 수도 없었다. 우선 그들을 돌보기 위한 공공 사업을 해야만 했다. 민중은 지역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마지막으로 정부 일을 배워야 했다. 마침내, 1933, 우리는 필리핀인들과 만나, 1945년에 그들이 독립을 위한 준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란 시기를 확정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 (필리핀에서) 발전을 이룩해 내었기 때문에, 인도차이나의 경우에 통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인도차이나를 신탁국으로 관리할 것이다. 신탁이란 단어는 여러 언어에서 심지어 번역할 단어 조차 없다. 신탁이란 소유자의 이익을 위해 관리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MARK BRADLEY, Franklin Roosevelt, Trusteeship and US Exceptionalism: Reconsidering the American Vision of Postcolonial Vietnam, in Marilyn B. Young and Robert Buzzanco(eds.), A Companion to the Vietnam War, Wiley-Blackwell (January 23, 2006),pp.131-132.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04 07:31 # 답글

    루스벨트가 10년도 안되서 중국이 공산화 될 줄 몰랐고. 제국주의 부활을 우려했던 디엔비엔푸가 일어날줄은, 한반도란 땅에서 전쟁이 터질줄은... 루스벨트가 명확한 계획과 비전이 있었고 능력을 발휘해도 냉전구도에 변화가 있었을까? 이건 역사의 미스테리군요...

    트루먼이 국제정치에 문외한인건 처음 알았습니다. 난 그나마 선방했다고 온 입장이었는데. 놀랍습니다. 진짜로요.
  • 파리13구 2017/12/04 08:14 #

    트루먼은 원폭이 개발 중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ㅠ

    트루먼은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비난을 받으며 대통령 직에 물러났지만,

    미국의 냉전을 위한 주요 토대를 구축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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