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회담과 베트민에 대한 중국,소련의 배신? Le monde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에 승리한 베트민은 베트남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 제네바에서의 정치 협상을 통해서, 프랑스군의 철군 그리고 호치민이 이끄는 독립 정부의 수립을 제네바 회의에서 관철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제네바 회담에서, 영국의 앤서니 이든, 프랑스의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소련의 몰로토프, 중국의 주은래가 베트민에게 압력을 행사, 베트민이 전쟁에서 얻은 것 보다 덜한 타협안을 받아들이게 하려 했다. 회담에서 특히, 소련과 중국은 협상 결렬시에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의 미국이 군사 개입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에 베트민에 타협을 강요했다. 

결국 호치민은 2가지 중요한 양보를 했다 : 17도선을 기점으로 하는 휴전선과 1956년에 국제 감시하의 전국적 자유 선거의 실시. 2년 뒤의 선거로, 베트남인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것이었다. 제네바 협정은 베트남 중립을 목적으로 했고, 남북 베트남 모두 어떤 세력과도 군사 동맹을 맺지 못하게 만들었다. 

LARRY BERMAN and Jason Newman, “The Vietnam War and It’s Impact,” , in The Encyclopedia of American Foreign Policy, edited by Alexander DeCorde, Richard Dean Burns, and Fredrik Logevall. Charles Scribner’s Sons, 2001.pp.597-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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