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와 스탈린 그리고 베트남... Le monde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루스벨트와 스탈린] 

스탈린과 루스벨트는 전후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식민통치가 부활하는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45년 2월의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인도차이나 문제를 처칠과 논의하는 것을 회피했다. 처칠은 대영제국이라는 명분을 위해서, 전후 인도차이나에서의 프랑스 통치 부활을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루스벨트는 스탈린과 이를 논의했다. 그는 신탁통치를 제안했고, 소련 지도자에게 “영국 이 생각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인도차이나를 프랑스에게 돌려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왜냐하면 그들은 신탁통치 방안이 자신들의 버마 정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스탈린이 동의하며, “인도차이나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며,” 영국이 이 지역을 위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얄타로부터 귀국하면서, 루스벨트는 기자들에게 전후의 신탁통치안을 설명하먼서, 프랑스,중국,미국,소련 그리고 가능하다면 필리핀도 이에 동참할 것이라 말했다.“스탈린이 이 방안을 좋아하고,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영국이 이에 반대한다. 그것이 대영제국을 날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Robert D. Schulzinger, A Time for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41–
1975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p.29.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2/01 20:33 # 답글

    당시 국제정치에서 루스벨트의 비전은 뭐였을까? 루스벨트가 임기를 끝날때까지 살았더라면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그게 궁금합니다. 루스벨트가 전후 처리 문제에서 비판을 받는다란 말이 나오지만, 그가 일찍 죽어버린 바람에... 비판자들도 비전이 있었다고는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루스벨트는 어땠습니까?
  • 파리13구 2017/12/02 03:02 #

    루스벨트의 전후 구상에 대해서는 관련 논문이 여러 편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만약 그가 더 살 수 있었다면, 세계대전에서 냉전으로의 이행은 보다 완만하고,점진적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특히, 해리 트루먼이 국제정치에 문외한이었다는 점이 중요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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