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은 북베트남의 팜반동을 어떻게 달랬을까?" Le monde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사진- 팜반동과 호치민>

미중화해와 북베트남.

1971년 키신저의 북경방문과 뒤이은 미중화해 소식은 하노이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1960년대 내내, 미국 제국주의와의 비타협적 투쟁을 강조하고, 소련의 미국과의 평화공존을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라 비난하면서, 모택동의 베이징은 하노이에게 반미 군사 투쟁을 주장하고, 특히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모택동의 중국이 이제 미국과의 화해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주요 군사물자 원조 국가였다. 

71년 11월 북베트남 총리 팜반동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팜반동은 모택동에게 중국이 닉슨을 초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 위해 방중했다. 모택동은 팜반동 총리에게 베트남이 타협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요했고, 중국이 2월에 닉슨 방문을 허용하지 말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Raymond Garthoff, Detente and Confrontation: American-Soviet Relations from Nixon to Reagan,  Brookings Institution Press,1985. p.255.]

회담에서 모택동은 팜반동을 달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의 승리덕분에 닉슨이 북경에 오게 되었다." 닉슨이 베트남 전쟁과 한국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 72년 2월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란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논의하면서, 모택동은 다음 속담을 인용했다. "빗자루의 손잡이가 짧으면, 당신은 벽의 저 높이에 있는 거미줄을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은 거미줄을 그냥 놔둬야 한다." 

이 속담은 당시의 국제정세에서 다음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 중국 빗자루가 짧아서, 중국은 장개석의 대만 잔류를 용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베트남의 빗자루도 짧으니, 팜반동도 사이공의 티우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티우를 인정하는 정치적 타협을 수용하여,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마무리 지으라는 충고였다. 모택동은 팜반동에게, 베트남에서의 현상유지를 인정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팜반동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실례합니다, 북베트남의 빗자루 손잡이는 충분히 길어서, 이 졸개들을 모두 베트남에서 쓸어버릴 정도로 충분합니다." 이 대답이 모택동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팜반동은 모택동에게 닉슨 초청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모택동은 닉슨의 방문은 이미 약속된 것이기 때문에, 취소할 수 없다고 답했다.


참고-

Hersh, Seymour M. (1983). The Price of Power: Kissinger in the Nixon White House. New York: Summit Books.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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