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수색-섬멸 작전 -1967년 8월 Le monde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주월 미군 사령관인 웨스트모어랜드가 추진했던

수색-섬멸 작전의 한계는 명확했다.

압도적인 화력과 기동력의 미군이 베트콩 밀집 지역을 쓸어버리지만,

소나기 같은 공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미군이 기지로 돌아가면,

베트콩이 다시 돌아와서, 지역을 다시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미군 작전은 베트콩의 전쟁 능력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었다.


참고-

Mark Lawrence, The Vietnam War: A Concise International Histo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p.105.





덧글

  • 존다리안 2017/11/17 13:09 # 답글

    사실 비인도적이라지만 프로젝트 피닉스를 일찌감치 실시했으면 베트콩이 발붙이기 어려웠을거
    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인가요? 공산주의자라고 찍히면 닥치고 학살했다는데...

    그런데 이게 좀 아이러니네요.
    인도네시아는 공산화가 안되었으니...
  • 파리13구 2017/11/17 13:58 #

    필리핀의 경우를 보면,

    그곳도 한때 게릴라전에 의한 혼란이 심했지만,

    막사이 사이의 등장 덕분에, 상대적 정치적 안정을 이를 수 있었습니다.

    막사이 사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국은 베트남의 막사이 사이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디엠도, 티우도 함량미달이었습니다. ㅠ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1/17 17:24 # 답글

    막사이사이가 비행기 추락을 겪지 않았더라면 잘했을까란 논란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결국은 베트남의 안정화를 위해선 정치-행정-수완가를 갖춰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미국이 잘못한건지... 한 명이라도 있을 것 같은데.
  • 파리13구 2017/11/17 18:41 #

    월남 지못미..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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