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미국과 중국의 베트남 원조... Le monde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로 베트남의 프랑스를 지원한다는 미국의 결의가 강화되었다. 프랑스의 베트남 잔류가 제국주의의 몸부림이기 보다는 냉전의 맥락에서의 공산주의 팽창에 대한 투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베트남에서는 호치민의 북베트남과 바오다이의 남베트남이 경쟁 관계에 있었다.)

한국전쟁 때문에, 베트남이 더욱 위태롭게 보였다. 트루먼 정부는 미국이 이미 유럽과 한국에서 공산주의 팽창의 저지를 위해 분투하기 때문에, 베트남에 지상군을 파병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대신에 미국은 베트남의 프랑스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워싱턴은 베트남에, 항공기,전차,대포,함정,소화기 small weapons, 탄약, 통신장비 그리고 다른 군수 물자를 보냈다. 

1952년말, 미국은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 전비의 1/3 이상을 부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워싱턴은 프랑스의 꼭두각시 체제인 바오다이의 베트남국 Associated State of Vietnam 에 대한 경제,기술 원조를 위해서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다.

미국의 원조 덕분에 프랑스군은 공세를 펼 수 있었지만, 전쟁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1950년 가을부터 전황이 프랑스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조언과 원조를 받은 베트민이 중국 국경으로부터 프랑스 군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 


참고-

Mark Lawrence, The Vietnam War: A Concise International Histo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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