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은 이중적 전쟁이었다."
30년대 프랑스 유학 베트남인의 좌절?

1965년에 시작된 린든 존슨의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란 군사적인 것인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었다.

존슨의 미국은 베트콩을 군사적으로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과 사이공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열세였다.

남베트남 장군 팜 쑤안 치우 Pham Xuan Chieu 는 "우리는 정치적으로 매우 약하며, 민족해방전선이 가진 주민에 대한 강력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과 남베트남이 군사력은 압도적이었지만, 정치력에서는 열세였다는 것이었다. 민족해방전선의 정치력은 막강했고, 심지어 군사적으로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곧 정치력을 회복했다. 따라서 팜쑤안치우에 따르면, "민족해방전선의 주민에 대한 정치조직과 정치 구조를 파괴"해야 할 필요가 존재했다. 

이런 이유로, 군사 휴전 이후 미군이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었다. 철수 이전에 미군은 사이공 체제의 군사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패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만 했다. 1966년 말 사이공의 한 관리가 기자에게, "우리는 순순하게 정치적인 기초에서 공산주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조직되어 있고 규율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베트콩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1965년 11월, 미군의 대량 개입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11월 30일, 베트남 방문을 마친 맥나마라가 존슨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농촌에서의 평정화 작전의 한계를 지적했다. “어느 곳의 안전도 지속적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응우옌까오끼 Nguyen Cao Ky 총리는 사이공이 인구의 25%만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2년 동안 이를 2배로 늘릴 것이라 애써서 강조했다. 

존슨의 베트남 전쟁은 끝없는 것이 될 것처럼 보였다.

Marilyn B. Young, The Vietnam Wars, 1945–1990 (New York: Harper Perennial, 1995)
by 파리13구 | 2017/11/11 09:4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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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까마귀옹 at 2017/11/11 16:44
당시 북베트남은 대한민국보다 더한 정통성과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남베트남은 북한만도 못한 정통성과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죠.

.....생각해 볼 수록 농담이 다소 섞인 그 담론이 생각나는군요.
'미국은, 한반도에서 딱 한번 성공한 뒤 그게 다른 곳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수십년 째 집착하고 있다.'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7/11/12 06:17
존슨의 전쟁을 보면,

미국은 남베트남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에 남베트남은 보조를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닉슨이 전쟁의 베트남화를 주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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