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수단 공산 쿠데타와 소련의 근심? Le monde

냉전 동안 소련은 세계 혁명에 혈안이던 혁명 국가였는가? 

<사진- 1971년 수단 공산주의 쿠데타 
공산 반군이 사회주의 집권 세력에 대해 벌인 쿠데타였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는 국제국이 존재했다. the International Department of the Central Committee

국제국의 기능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통제하는 것이었다. 1943년 코민테른 해체 이후, 소련이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 만든 것이 국제국이었다. 국제국 국장은 1957년-1986년까지 보리스 포노마레프 Boris Ponomarev 였다. 특히, 중소 분쟁이 고조되면서, 소련 공산당 국제국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와 제3세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했다.

포노마레프에게 중소 분열의 교훈이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라도, 중국 처럼 소련 최대의 적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1971년의 수단 쿠데타는 포노마레프에게 이 교훈을 적용시킬 기회가 된 모양이다. 71년 수단의 공산주의 반군이 사회주의 대통령 정부에 반기를 들어 쿠데타를 벌였다. 공산 쿠데타는 71년 7월 19일에 발생했지만, 국내적 혹은 국제적 지원을 받는데 실패했다. 가파르 니메이리 대통령 측 군부가 역쿠데타를 벌여서, 니메이리가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국 국장 포노마레프는 71년 수단 공산 쿠데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쿠데타가 있던 밤, 그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공포스러운 생각을 했다. 만약 반군이 승리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그곳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떠안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들 모두를 먹여 살려야 할 것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악몽이었다. 우리에게 행운이게도, 그들이 졌다."

1980년 프랑스 대선에 대해서도 포노마레프는 같은 입장이었다. 국제국 내부에 프랑수아 미테랑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포노마레프 국장은 해외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승리가 소련에게 부채가 될 수도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가지고 있었다. 

WOLFF, DAVID. "INTERKIT: SOVIET SINOLOGY AND THE SINO-SOVIET RIFT." Russian History 30, no. 4 (2003),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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