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베트남]레주언과 호치민의 관계...
키신저의 경고...

<하노이의 1인자 호지명과 2인자 레주언>

레주언은 베트남과 미국의 대결이었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동안, 북베트남의 실질적인 1인자였다. 

57년 이전까지 레주언은 주로 남쪽에서 활동했다. 주언은 남베트남에 지하 조직의 확대 등을 지도하며, 이후 당내에서 남부파라고 주목받게 되었다. 1954년, 남부 중앙국을 개편한 남부 위원회 서기로 취임했다.

1957년에 수도 하노이로 올라와서 서기국원으로 취임하여, 제 1서기의 직무를 대행했다. 1960년 제3차 전당대회에서 제1 당서기로 취임하였다. 1969년에 호찌민이 사망하면서, 국가 주석이 공석이 되자, 제1 당서기로서 명실공히 당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역사가 리엔-항 구엔 Lien-Hang T. Nguyen에 따르면, 명목상으로 하노이에서 레주언이 호치민의 뒤를 이어 2인자 였지만, 실제 권력은 레주언에게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호치민을 능가하는 레주언으로의 권력 집중이 역사가 구엔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호치민에게 권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레주언이 하노이의 정책결정 과정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레주언과 호치민의 관계를 북한사의 시각에서, 박헌영과 김일성 관계에 비교할 수 있다. 남쪽 출신 레주언의 하노이 권력 장악은, 남로당 출신의 박헌영이 평양에서 김일성을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본다. 

구엔에 따르면, 하노이가 1960년대 초에 무력을 통한 베트남 통일노선을 채택한 것은 북베트남 사회주의 건설위한 각종 실험이 실패한 것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노이의 베트남 통일전쟁은 국내 문제의 참담한 실패를 가리기 위한 효율적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레주언이 급진과격파 였다면, 호치민과 보 구엔 지압은 온건파에 속했다고 한다. 후자의 인물들은 전쟁의 향방을 온건한 쪽으로 이끄려 했고, 레주언이 북베트남 사회주의 혁명을 희생하여 남쪽에 대한 전면전을 주장할때, 이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레주언이 전면적인 총공세를 통한 도시 점령을 주장하는 전쟁전략을 주장했다면, 호치민과 지압은 모택동의 게릴라 전술에 의거해서 총공세가 농촌에서의 게릴라 투쟁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참고- 

Extended Interview- Scholar Lien-Hang T. Nguyen: Hanoi’s Secrets, VIETNAM MAGAZINE, 2013년.
by 파리13구 | 2017/09/12 16:08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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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he buzzard at 2017/09/12 22:37
레주언이 또 저렇게 실질적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전까지는 레닌이나 마오 같은 위상인줄 알았는데, 실질적으로 호치민과 레주언의 관계는 울브리히트-호네커 정도에 가깝다고 봐야 되려나요?(물론 호치민은 격하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개인숭배 대상이라는 점을 빼면)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7/09/12 22:44
호치민이 베트남 공산주의의 창업주인 것을 생각하면,

레주언에게 권력을 내준 것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서양에서도 북베트남의 실세가 호치민이라 오해하고,

협상을 위해 호치민에 줄을 대는 경우가 있었는데,

실권이 레주언에게 있었으니, 소용이 있을리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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