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베트남 전쟁 정책의 이중성?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 정책에 대해서,

챙자이 Qiang Zhai 는 중국 정책의 이중성을 강조했다 : 협력과 봉쇄. 

베이징은 호지명의 당이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외세에 투쟁하는데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협력은 중국의 남부 국경에서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낸다는 점에서 중국의 안보 이익에 기여했고, 인도차이나 혁명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와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베트남 노동당이 독립과 통일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었던 베이징은 베트남이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대한 지배에 나서는 것은 봉쇄했다. 

이렇게 협력과 봉쇄 사이에서 중국의 베트남 정책이 모순,갈등 관계를 이루면서, 베트남-중국 관계도 변화해 나갔다.

1950-1968년 동안 중국의 정책에서 협력이 우세했다. 이 시기 동안, 중국 지도자들은 베트남이 통제하는 인도차이나 보다는 미국의 위협을 더 중시했다. 그들은 베트남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과 투쟁하는 것을 지원하는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협력의 가운데에서도, 베이징은 하노이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대한 지배 야욕을 보이는 것을 파악하게 될 때, 이를 저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령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그랬다. 베이징이 시아누크와 수바나 푸마를 보호한 것은 장래 있을지 모를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지배 의도를 견제,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0년대 말부터, 특히 1972-1975년 동안, 중국 정책에서 봉쇄가 강조되었다. 중소 갈등이 심화되고, 하노이와 모스크바의 관계가 강화되자, 베이징은 베트남 전쟁 이후의 인도차이나에서, 소련과 동맹을 맺은 베트남이 패권 세력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되면, 북쪽에는 소련이, 서쪽에는 인도가, 동쪽에는 장개석의 대만이, 남쪽은 소련과 동맹인 베트남이 존재하게 되어, 중국은 사방으로 포위된 형국이 될지로 몰랐다. 

미국의 베트남 철수로, 미 제국주의가 사라진 인도차이나에서 소련이 그 공백을 메우고, 중국 남부에 대한 안보 불안의 씨앗이 될 수도 있었다.

1968-1969년, 베이징은 하노이에게 캄보이아 혁명의 사주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1970년 캄보이아 위기 동안,베이징은 시아누크를 지원하면서도, 동시에 론놀과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는 투트랙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캄보디아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서 였다. 

인도차이나 전쟁의 마지막까지 베이징은 하노이를 돕기는 했지만, 동시에 반-베트남 성향의 크메르루즈를 지원했고, 이는 하노이의 팽창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 였다.


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950-1975 (Chapel Hill-NC: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0), 217-218.



-베트남 전쟁을 소련과 중국이 주도하는 공산세력의 동남아 공산화 음모의 산물이라 주장한 도미노 이론이 부끄러워 진다. ㅠ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